살다 보면 별 '짓'을 다 할 때가 있다. 곱게 별 '일'이라고 불러줄 수 없는 일. 숨 쉬는 일에 숨이 막히고, 숨어 종일 울다, 우연히 마신 커피 한 잔에 살 것 같다는 말을 냈다. 어제는 온갖 슬픈 말들을 붙여 마지막 말을 남기던 그 입으로 가증스레 오늘은 온전히 다른 말을 뱉었다.
쓸데없는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별짓 후에 남겨진 퉁퉁하게 불어 터진 흔적. 별짓으로 소멸하는 하루에도 아이들이 창조해 내는 이벤트들은 강박적 즐거움을 싣고 달려들고. 엄마라면 무릇 행복해야 하므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별 '일'을 하며 하루를 일구어야 한다. 별 '짓'이 결코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사직을 하고 잃은 것이라면 날짜를 셈하는 일. 한해의 가운데에 다다랐음을 알지 못했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으며, 최소한의 즐거움마저 장착하지 못했다.
우울에 고립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책을 읽다, 음악을 듣다가, 밥을 삼키거나 아이들을 따라 소리 내어 웃다가도 예고 없이 울어 버리고 말았으므로. 두서없이, 하릴없이 흐르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 보지만, 우연이나 무의식의 틈으로부터 새어 나온 눈물은 종일 줄기를 부풀렸다.
변명하듯 책을 덮고, 귀를 막아야 했으며, 좋아하던 일을 하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괴이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 싫어 내가 아닌 나를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고립시키고,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격리시켰다. 마음의 체구에 꼭 맞게 응축된 보이지 않는 고립캡슐에 갇힐 때, 비로소 숨 쉴 수 있었다.
우울에 잠식된 이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면 아침의 세수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을 안다. 시간을 요하거나 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그저 매일 돌아오는 일, 그것은 살아내야 하는 하루가 또다시 할당되었다는 의미였다.
당장 놓인 하루나 앞으로 마주해야 할 날들은 생각하면 슬펐다. 그렇게 미래형은 언제나 슬펐다. 앞을 바라보는 문장이나 앞으로 내딛는 걸음은 불가능해 보였다.
과거형도 마찬가지. 지나온 것들에 슬프지 않은 것은 없었으므로. 현재형이나 현재진행형으로 문장을 나열하고 싶지만, 'ㅆ다'로 맺고 말았다. 지나간 것들에 울울하게 꾸역거리다 보면, 금시에 울락불락해지고 글자들은 불규칙하게 너울거렸다. 언제고 울렁울렁하게 울고 있는 글이고 말았다.
'사랑해'라는 아름다운 말조차 소리를 내는 순간, 과거의 어미가 따라붙었고 활강하듯 슬퍼졌다. 소멸이나 단절. 지속하지 못한 어스름한 미안함 따위나 죄책감. 무엇이 멈추게 했던 걸까, 왜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을까와 같은 후회나 회한. '사랑했어'보다 '사랑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에 든다.
다시 시작하는 사랑은 이전의 단어만큼 순소하거나 짙지 못했다. 두려움이나 슬픔 따위가 연기구름처럼 낮게 깔려 희석되고, 물그스름하게 성긴 사이사이로 슬픔은 흘러넘쳤다. 과연 다시 시작하는 '슬프다'도 엷게 희석되었을까. 되려 농밀한 것들이 덧대어져 가뭇하게 슬펐고, 결국엔 불멸하게 슬펐다.
시작이 슬픔이라면 마지막도 기어코 슬픔이고 말았다. 버려지지도, 비우지도 못한 채, 오래도록 단단하게 겹진 슬픔이 싫다. 이별하듯 멀어지고 싶다. 차곡하게, 농밀하게 쌓여가는 슬픔의 무게에 짓눌린다.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다.
초름하고 빈약한 마음으로 사랑을 흉내내기보다 아름다운 말만 수집하여 가뿐하게 눌러 적고 싶다. 감히 현재형으로. 슬픔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현재형 뿐이므로. 담담하게 눈물로 슬픔을 세수한다. 오늘도 하염없이 세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