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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Oct 31. 2024

'연락처가 없습니다'

- 기억하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 -


저장공간을 보여주는 막대그래프가 찰랑찰랑해질 때즈음, 휴대전화는 미세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들키는 순간, 그는 신이 나서 내게 새로운 핸드폰 선물했다. 


새로운 설렘보다 두려움이 큰 편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옮기는 일에 능하지 못한 아날로그적나는 언제나 함박웃음으로 그의 선물을 맞이하지 못했다. 하나 열렬하게 소개하느라 신이 난 그의 얼굴을 보면 결국엔 기어코 웃고 말았다.


사직 이후 아이들 곁에 있으니 긴급한 연락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 직장을 그만두면서 그마저 있던 연락처들을 정리하고 보니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가 소소했다. 마저도 새것으로 옮길 생각을 하못했고. 덕분에 올해는 저장된 연락처가 하나도 없는  살았다. 


가족들의 전화번호는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었던 탓에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사실 그런 줄도 모르고 지냈다. '저장된 연락처가 없습니다'

 

"엄마는 아들번호도 저장 안 했어? 이상한 엄마야!"

어느 날 아이가 들려준 투정 덕분에 알았다. 사는 게 뭐가 그리 바쁠까. 애써 더듬어 숫자를 누르고 저장하는 일마저 고단했다. 나는 전화를 발신하는 쪽이 아니고, 어차피 사랑하는 이들의 나란한 숫자들은 마음 안에 새겨져 언제든 누를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오래도록 지우지 못한 번호가 있다. 더 이상 누를 수 없는 번호. 결코 삭제되지 못하고 살아남은 일련의 숫자들. 연락처에 저장되지도 못하고 마음에서 지워지지도 못한 채 선명하게 나열된 숫자. 20년이 지나도록 고집스럽게 0.1.1. 세 자리를 앞세워선 만고불멸하게 새겨진 꼿꼿한 숫자.


수차례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고 핸드폰 속 숫자들도 전부 지웠지만 지워내지 못했다. 나의 의식 바깥에서 비의식적으로 견결하고 은밀하게 살아남고 말았다.



말이 목구멍으로 넘어와 소리를 내지 못하던 시절, 전화를 걸 수도 받을 수도 없어 한참을 역거리며 지냈다. 그럴 때면 참고 참았다 공중전화로 가 번호를 눌렀다. 없는 번호라고 냉정하고 다정하게 안내하는 음성이 들리면 묵직한 수화기를 대롱대롱 놓아버렸다. 듣고 싶지 않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굳이 공중전화였다. 분노나 슬픔 따위를 사납게 뿜어도 되는 곳. 대학교 원룸들 사이 비뚜름히 서있던 공중전화 부스는 유난히 인기가 없었고. 희망을 안고 들어갔다가 무망을 그러쥐고 나올 수 있는 비현실적으로 현실적인 공간.


그곳이 편했다. 한참을 그곳에 쪼그려 시간을 버리고 마음을 버리고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피폐해질 수 있었다. 널 잃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시들하게, 황폐하게 고꾸라져 있으면 누르고 눌렀던 전화번호 말고는 다 사라졌다. 일련의 숫자들만 버려둔 채 허수하게 비척비척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각인되고 말았다.

깊숙이 저장되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고요히 나만 보슬보슬 증발하던 외롭고 슬펐던 시간들. 소리를 내는 방법을 잃었던 그때 할 수 있던 유일한 일이었다.


통화가 불가능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말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일. 너와 함께 있는 것만 같아 슬퍼도 자꾸만 갈구하게 되는 일. 비좁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간절히 바라고 무한히 해내면 결국 가닿을 것만 같은 일. 그리고 결코 닿을 수 없는 일. 그것이 내가 너와 이별하는 방법이었다.


이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너의 부존재를 알려주는 또박또박한 기계음을 들으면 한 걸음 뒤로 멀어지는 것 같았다. 걸고 다시 걸다 너무 멀어지지 않게 하루에 일정량을 넘진 못했다. 멀어지고 싶지만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 지우고 싶지만 지워질까 봐 두려워 매일 습관처럼 좁고 어두운 공간을 찾아가 절절하게 걸었다.


그때 내가 마주한 통제불가능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슬픔, 분노, 절망과 같은 그런 조구마한 낱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거대하고 묵직한 덩어리. 누군가 시간이 지나고 물어왔을 때 난 그것에 이름을 붙여줬다. 영영 다시 맞지 않을 감정. 결코 내 안에 담지 않을 무언가.




15년을 직장에서 일할 때, 팀원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 지워내는 일이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한지 일주일 즈음, 퇴근길에 전화가 울렸다.

"누구세요?"

"내 번호를 아직도 저장을 안 했단 말이지."


퇴근길 지하철에서 혼쭐이 났다. 감히 당신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뒤로는 인사이동 후엔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상급자의 뒷번호 정도는 눈으로 숙지해 두었다. 감히 저장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순정하게 기억나는 동료들의 전화번호가 있다. 휴대전화에 또박또박 저장해두지 않았음에도 맘에 고스란히 담긴 번호들. 숫자 하나마다 사랑을 듬뿍 고선 묵직하게 자리 잡고 진득하게 눌러앉은 번호들.


발신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사랑이라 저장된 이들에게 틈이 보일 때, 곁에 공간이 날 때 아낌없이 전화를 걸어 그 곁에 있어줄 준비가 되어있을 뿐. 언제나 곁도, 틈도 나지 않도록 그들이 하염없이 안온하길 바란다.



그러므로 내 휴대전화가 알려주는 '저장된 연락처가 없습니다'는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다. 마음에 '숨겨둔 연락처는 잘 있습니다',  문장이 꼭 알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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