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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Apr 23. 2024

뒤끝이 심해도 심하게 심한 사람

"저요!"


말소리가 크지 않으며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다. 하나 매번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말로 낼 용기가 없으므로 감히 소리의 형태로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 그렇게 마지막까지 차올랐던 말은 과연 후회로 남아 마음속에 둥둥 떠다니기에 이곳에라도 꺼내주려 한다. 


'나쁜 마음 방생기'라고나 할까.




다 보면 쉬이 보이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다. 아니, 많다. 대개 그 곁에 오는 사람들은 상냥하지 못했다.


또한 공포를 안은 위협적인 찰나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 다만 기억력이 좋은 내겐 고스란히 남아 지워지지 못했을 뿐. 그것들이 겹겹이 포개져 내 맘의 높이를 넘어버린 것이라고 달래면서도 마음은 선득해졌다.




3년 차 직장인의 시절,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어느 등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웅크려 있었기에 그날 내 등을 따듯하게 감싸주었던  다정함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맘때면 기어코 기억이 나고 마는 것일까. 


봄날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반달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몸이 약했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가느다랬다. 직접 와서 나를 보고 상대할 때면 "이 어린 **....", "니까지 것..."으로 시작할 때가 많았다.


쉬워 보이는 상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이는 많지 않았고, 단단히 눌러놓았던 분노버튼을 느슨하게 놓아버리게 만드는 분노유발자가 되기 십상이었다.


'세무서'라는 공간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세금'이라는 묵직한 단어의 탓이라고도 생각했고. 물론 거기에 '쉬워 보이는' 나의 탓도 더해졌을 테지. 열정 가득했던 나는 그때만 해도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따뜻한 세정을 이루어내 근사한 나라가 될 있을 거라며 담대한 포부를 가졌었다.



큰 민원이 일었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온 층이 시끄러워졌다. 사안이 마무리되자마자 온몸이 벌벌 떨려 밖으로 조용히 나갔다. 퇴근 후에 컴컴한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민원인도 있었기에 그런 날이면 혼자 나서일조차 두려웠지만, 눈물이 쏟아져 앉아있기가 불가능했다.


하나 불편한 감정을 버려낼 공간조차 없었다. 갈 곳이라야 주차장 뒤편 정도. 앞이 보이지 않았고 곰팡이향이 가득한 구석에 최대한 웅크려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그러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아는 목소리. 굳이 다른 사무실까지 방문하여 나를 구경하던 사람 중의 한 사람.


"나가서 울어! 어디서.. 팔리게 여기서 울어! 담배맛 떨어지게."



우글거리는 눈물을 훔치고 등을 돌려보니 여러 개의 구두가 보였다. 그중 가장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말을 냈을 테지.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으니까. 일어날 힘이 없어 미적거리니 다시 들려주었다.


"어?? 빨리 가라니까!!"



그만 울음을 그치라고 나를 달래주려는 말이었을까. 달려 나왔다. 근처 아름드리 우거진 나무 아래에서 눈물을 버렸다.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의 부재로 민원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다행히 이미 버려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기력이 없었다.



간단한 확인조차 해보지 않고 쏟아내는 거친 말들과 말이 격해질수록 요동치는 몸짓, 그 와중에 구경하려 모여드는 건물 속 수많은 사람들, 말리는 이는 없었다. 적막한 공기 속 고개를 푹 숙이고 귀를 쫑긋하던 수많은 이들 안에서 하염없이 새겨진 무참한 고립감.


그곳에서 받은 나의 결과물이 슬펐다.


우리 모두 언제나 겪는 일이며 함께 해주기엔 각자 당면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생각지 못한 순간에 받은 나에 대한 성적표는 처참했다.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마음속으로 나의 점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일까. 사람에 대한 깊은 혐오감이 자리 잡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와 깊이 새겨졌다.


나도 결국엔 사람. 본인이 불편한 상황에 몰리면 결국 이런저런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 '사람'이고.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 



그때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이 있었는데. 용기 없는 나는 내뱉지 못했다. 그 말이 목에 걸린 탓인가 이 어여쁜 봄날이면 참 어여쁘지 못했던 당신이 생각난다. 부디 이 어여쁜 봄날 참으로 어여쁘지 않았던 나를 당신도 기억해 주길. 


부디 위태롭게 지키고 있는 따듯한 것들을 차갑 짓밟지 말아 주길. 감히 바라본다.


이렇게나 뒤끝이 심한 사람이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고작 20대. 일 년을 일해보니 선명하게 알겠더라. 나는 신중함이 단점일 정도로 신중한 편이 이 일은 내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공무원을 바라셨고, 나는 수학을 몹시 좋아했다. 그 기묘한 조합으로 시작한 세무공무원.


하나 그 일은 수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능해야 하는 일. 안타깝게도 내가 가장 자신이 없고 몹시도 싫어하는 일이었다. 몇 번이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나의 이야기는 가닿지 못했다. 부모님조차 설득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능하지 못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야 마는 고통을 안다. 나를 지우고 상대를 위해 살아가는 일. 모든 것을 잃고 더 이상 자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즈음이면 고통마저 무뎌진다. 희망은 더 이상 희망이 될 수 없으며,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니 부디 마음속 간절한 소리가 소리의 형태로 내어지지 않는 말이 있다면, 참고 삼켜도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이 있다면, 꼭 용기 내어 꺼내어보길. 


그것은 지난날 나를 위해서만 살아왔던 가엾은 자신을 위해 반드시 해주어야 하는 일이다.



비록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지만, 당신은 꼭 알았으면 하고 글로 내어본다. 소리를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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