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ㅡ Jul 02. 2022

20년 만의 답장


사소한 것들에도 사랑이 깃들면 그 어느 것보다 큰 힘을 가지고 내 머릿속에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며 깊숙이 틀어박힌다.


네가 그렇다. 아니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과 같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면 "난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하늘이 너무 좋아!" 하며 미소 짓던 네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그래서 두 손의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네모 모양의 카메라 모양을 만들어서 사진을 찍고는 너에게 보낸다.

'선물!'


20년 전 이런 날이었다면 하루 온종일 울었을 것이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내가 싫어서, 한편으로는 나를 버린 네가 원망스러워서, 이렇게 살아서 존재하고 있는 내가 끔찍해서..

이유는 끝이 없었다.




네가 사라진 다음 내 손에 도착한 긴 편지에는 온통 미안하다는 말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미안한 것인지. 하지만 한 달, 두 달, 일 년, 10년을 살다 보니 너의 말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살아갈 나를 넌 짐작했던 것이다. 나보다 훨씬 어른이었던 친구, 아니 어른이라는 의미가 여기에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소중하게 아껴주었던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시간들 중 가장 큰 전환점이라면, 그건 바로 너였다.

너와의 이별이었다.




어릴 적부터 병원을 다녀야만 했던 이유로 죽음이라는 것을 친구처럼 곁에 두고 살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의미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학생활은 두 다 혼자 해낼 수 있다고 족들을 설득하 온 나의 첫 로서기이자 서울살이였다. 그러니 학비와 월세, 교재비, 생활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과외 및 각종 아르바이트, 그리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학과 공부 열심히 해야 했다.


경제학과. 학부 자체가 250명쯤 되는 거대 인원 속에서 그렇지 않아도 소심한 성격을 가진 나는 여유로운 시간도 경제적 여유마저도 없었으니, 분명 그 무리 속에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처럼 지냈다. 그런 내 곁에 근사하게도 마음을 내어주던 친구, 네가 있었다.



나와 정반대의 사람. 제주에서 올라온 자유분방하고, 반삭발의 탈색머리, 힙합 패션에 교정기를 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어여쁜, 그리고 그보다 더 곱고 보드라운 마음을 가진 친구였다. 인기도 많고 웃음도 많고 외로웠던 내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날에는 곁에 늦게까지 머물며 내가 잠든 것을 보고 내 방도 다 정리한 후, 대중교통이 끊겨 집까지 4시간을 걸어가던 친구.


감사함이 이루 말할 수도 없던 사람, 내겐 날 지켜주는 천사 같던 너였다.



학과시험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부모님과 같이 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일주일 동안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올라왔다. 보지 못한 시험들을 과목마다 혼자 따로 보아야 하는 정신없는  주를 보내다 전화를 받았다.


시험도 엉망으로 치른 데다 밀린 과외 아르바이트의 스케줄로 머리가 복잡했고, 며칠간 내 머릿속처럼 음산한 날씨 계속이었다.


전화 속 목소리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고, 슬퍼 보였고, 간절했다. 친구의 언니였다. 친구가 지금 아파 병원에 있는데 의식이 희미한 상태로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 


이것은 언어나 말 따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피어오르다 사라질 연기가 잠시 내 귓속을 스치는 느낌, 그 연기에 취해 난 마비된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멈췄고 달렸다.


침침한 비가 소리 내어 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귀가 먹먹했다. 물속을 헤매고 도착한 병원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널 마주할 수도 없었다. 면회시간에 다 갖춰 입고 너의 병상에 다가갔다.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친구였다. 귀에 이어폰이 끼워져 있었다. 맞다. 예쁜 내 친구였다. 손을 살포시 잡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냥 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언제나처럼 행복했다.


그런 네가 잠깐 눈을 뜨고 말했다. "엄마 온대." 웃었다. 내 친구가. 그리고 난 울며 웃었다. 미친 것처럼.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깨았던 그때, 너와 함께였던 내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던 순간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나만 숨을 쉬고 나 혼자 살아있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견뎌내야 하는 형벌을 치르고 있는 느낌, 감각조차 잃은 무의미한 고통의 나날들일 뿐이었다.


그때 모든 삶의 색깔들을 잃어버렸다. 모두 잿빛. 너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그때 하늘의 빛깔. 그것 빼곤 모두 다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동안 알 수 없는 무거운 죄책감에 꼼짝을 못 하고 집 한 귀퉁이에 온종일 구겨 지냈다. 왜 나는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의 아픔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그럼에도 나는 너의 친구라고 칭할 수 있는가. 나는 너의 마지막 순간 곁에 있을 자격이 있을까. 모든 게 나 때문인 것은 아닐까.


수만 가지의 불안한 생각들로 혼자 지내다 보니 잠시 말하는 법을 잊게 되었다. 친구들이 전화해도 받을 수가 없었고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도 그대로 앉아 움직이지 못했으며 부모님께는 간혹 문자로 안부를 전했다.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 못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친구가 떠나기 얼마 전이었다. 친구의 언니가 내게 줄 게 있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내게 쓴 편지를 꼭 전해달라고 했다고. 마지막으로 쓴 친구의 편지를 장례식 끝나고 조금 정리가 되면 부치겠다고 다.


많이 기다렸다. 아니 안 기다렸다. 무서웠다. 편지를 읽어 내려갈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워 잊으려 애썼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간절히 기다렸겠지. 매일 부들부들 떨며 편지함에 손을 넣어보았으니.


그날 밤 내 손에 도착한 네 편지는 5장. 빼곡하게 글자로 가득 차 있었고, 그중 반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마지막 문장마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그날 밤은 야속할 정도로 깊고 슬펐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좁은 자취방에서 소리 내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던 목구멍의 핏 맛이 고대로 느껴진다.



자신이 선택한 죽음이라고 했다. 아파서 갑자기 떠나게 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후 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난 너로 인해 행복했고 너로 인해 살아낼 수 있었는데, 난 너에게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정말로 너의 친구라고 수도 없는, 존재 같지 않은 존재, 아니 그보다도 못한 존재였던 것이. 내가 이렇게 자책하고 괴로워할 걸 알기에 넌 내게 미안하다고 되뇌었을 것이다. 그제야 편지의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왜 그렇게도 내게 미안하다고 했는지.


하지만 내가 너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아니 '미안'이라는 단어로는 감히 형용할 수 없다. 어떤 단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너에게 전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펜을 들었지만 감히 써내려 갈 수 없었던 답장을, 수도 없이 혼자 말로 써 내려갔던 답장을, 어떤 때는 내뱉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써 내려갔던 나의 답장은 전해졌을까?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글을 몇십 번을 다시 쓰고 있다. 끝을 내기가 어렵다. 나도 너처럼 미안하다는 말로 끝을 맺고 싶지만 내겐 그럴 자격이 없다. 눈물이 가려 글자가 잘 보이지 않고,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가 힘들며, 아직 내겐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러울 만큼 소중한 너라서. 그래서 미안하다.


마지막 순간에 내 이름을 불러준 일과 나를 위해 얼마 남지 않았던 소중한 시간을 내 눈물 가득 써 내려갔을 편지도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다. 너를 위해 난 하루하루 누구보다 빼곡히 곱게 살아간다. 아니 살아가려 노력한다. 네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네가 아끼던 그 파란 하늘이 너라고 생각하며  널 보듯 웃고 있다.


눈물 나게 웃고 있다.






이전 01화 못된 선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