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변수
학창 시절 OMR카드 답안지를 제대로 마킹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좋게 말해서 습관이지 혹시 밀렸거나 잘못 마킹했을까 봐 확인하는 강박에 가까웠다. 그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을 정도로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금처럼 전염병이 돌던 때도 아니고, 목격한 학교폭력이 없을 정도로 1990년대 여고생다운 순수함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극성팬이라면 콘서트장에 가는 친구가 있는 정도였다. 나의 유일한 딴짓은 별밤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때부터 독서를 생활화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공 서적과 수험서에 짓눌려 있었지만 성과 없이 끝나버린 기억이 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 길은 나의 길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교 시절 전교 1등을 해본 적은 없고, 전교 2등이 최고 등수였다. 전 학년 전 과목 전체 평균 전교 12등으로 3% 안에 들어서 내신 1등급을 받았다. 나는 내가 공부로 어느 정도 성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공부로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놓은 것은 아니어서 대학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대학 성적이 취업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껏 나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1990년대 대학 등록금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평생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어떻게 먹고살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탐색하지 못한 채 적당히 일하다가 돈을 모아서 대학 선배와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는 외벌이가 되었지만, 남편만이 나를 먹여 살린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가정 경제를 관리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경제는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고 모으고 불리는 것도 모두 중요하다. 나는 살림이 체질인 것 같았고 집안에서 행복했다. 시댁에서 부모님 세대처럼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변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평소 가끔이라도 하게 되는 걱정들이 다 변수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병에 걸리거나 다치거나 아프면 어떡하지, 취업을 못하면 어떡하지, 결혼했는데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하지(더 나아가서는 귀남이가 필요하던 시대를 경험해서인지 아들을 못 낳으면 어떡하지), 심지어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까지 걱정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각자의 복이 있듯이 인생의 변수도 저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변수라는 점에서 인생의 고난이 갑작스럽게 닥친 것과 같다.
인생의 변수는 알 수 없기에 피할 수도 없다. 죽을 때까지 어떤 변수들이 나타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부모님 품에서 생활하다가 결혼 후 남편과 독립적인 가정을 꾸렸다고 생각했다. 결혼비용도 비슷하게 들었다. 양가에 손 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살아가는 것, 우리끼리 소박하게나마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하게 해야 할 사위 역할은 없었지만 당연하게 해야 할 며느리 역할은 있었다. 평일에는 독박육아, 주말에는 시댁에서의 노동, 결혼한 이상 잘해보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나의 노력은 너무나도 당연한 아무것도 아니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다. 결혼 당시 부모님께서는 나의 고생이 보였는지 결혼보다는 공부를 권하셨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인생의 변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러 고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기도 하고, 재난상황에서도 새로운 기회는 생겨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반복되면서 온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은 불행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나의 변수는 모두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오롯이 나만이 해결해야 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한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물론 앞으로도 크고 작은 인생의 변수들이 오고 갈 것이다.
덧)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 전문직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꿈나무 2호에게 전해본다. 다행스럽게도 수학 1등급을 받았다. (요즘은 석차백분율 4%까지가 1등급으로 과목별로 등급이 나온다.) 꿈나무 2호의 성적보다도 공부하려는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칭찬해 주고 싶다. 비싼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신이 공부하고자 하면 한다. 인사이드아웃 2 테마파크 전시회장에 가고 싶어 하니 데리고 가야겠다.
나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공부를 잘했던 꿈나무 1호는 한번 공부를 놓기 시작하니까 되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래도 공부로 성공할 것이라고 하니까 믿고 기다려 줄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학원을 안 다녔고, 공부를 안 해도 국영수를 빼고는 1등급이 나오니까 꿈나무 1호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자신의 말대로 공부를 안 하니까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이다. 요즘 귀남이의 반항과 고민을 연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