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콘텐츠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학교 선후배로 서로를 조심스럽게 알아가던 20대의 우리는 알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30대에 두 아이의 부모가 될 줄 몰랐다. 더군다나 40대에는 쉼표와 마침표의 어디쯤에 와 있을 줄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며느리 역할을 못하겠다고 말하며 독립을 원한다고 했다. 처음에 그는 '아이들이 있는데 설마 그렇게 하겠어'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는 고부갈등은 해결해 주지 못했지만, 연애 시절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는 약속은 지킨 셈이다. 나는 독립을 했고, 혼자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삶이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다운 삶을 산다는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예전에는 더 많은 걱정이 있었다. 고로 걱정 없는 인생은 없다고 봐야 한다.
나와는 다른 환경이긴 하지만,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단편 소설에서 수전이 왜 19호실로 갔는지 알 것 같다. '엄마의 방'이 필요했던 수전은 집에서 그런 공간을 마련해 보지만, 아이들로 인해 이내 가족실이 되고 만다. 수전은 광고회사를 다녔고, 매슈는 신문사 차장급 기자이다. 결혼 후 수전은 직장을 그만두고 네 아이를 낳았다. 그들에게 사랑은 삶의 중심이자 원천이었다. 그러나 매슈가 파티에서 만난 여자와 외도한 것을 고백했고 수전은 이해하려 노력한다. 수전은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겪으며 자기만의 삶이 있는 여성으로 해방될 준비를 한다. 가사도우미가 있었지만, 입주가정부까지 들이고, 수전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탈진했던 나는 이 부분이 가장 공감되었다. 매슈는 수전에게도 애인이 생기기를 바랐고, 넷이 함께 만나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매슈의 당연한 태도는 너무나도 황당했고, 수전의 결말은 씁쓸함을 남겼다.
둘의 결혼 생활에 시부모님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리 돈을 잘 벌어다 주고, 좋은 집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살아도 문제는 발생한다. 『19호실로 가다』는 매슈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외도가 문제이다. 여기서 핵심은 '당연하게 생각하는'이다. 나 역시 너무나 당연한 며느리 역할이 문제였다. 남편도 점점 집안일을 너무나 당연하게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혼자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시부모님께서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하는 일 없이 편하게 산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애 키우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셨다. 즉 내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고, 돈 벌어오는 일이 최고라는 인식은 대화조차 되지 않는다.
과거형이지만 우리는 사랑했다. 만난 지 2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연애 소설은 술술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금희 작가님의 《너무 한낮의 연애》같은 연애 소설을 쓰고 싶었다.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말하는 양희라는 캐릭터에 매료되었다. 그녀의 가난은 필용에게 비웃지 않는 나무를 보라고 말한다. 양희에게도 사랑은 없어졌다. "나 안 해요. 사랑"이라고 양희는 필용에게 말한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연극을 공연하고 있는 양희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나도 지금 꿈을 키우고 있다. 소설을 쓰겠다는. 한두 편은 공개하기도 했지만, 공모전 경험은 없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 자격증을 땄고, 아이들과 그림책을 원 없이 봤다. 그림 그리기, 만들기, 요리 등으로 다양한 독후 활동도 했다. 아이들의 독서 기록장과 사진으로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때부터 블로그를 했다면 불특정 다수들이 우리의 활동을 볼 수 있었겠지만, 우리의 활동은 고요하게 집 안에서 이루어졌다. 워낙 기계치이고, 온라인 활동은 거의 모르고 지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이용한 것은 온라인 쇼핑이다. 나만의 시간이 생겼을 때 블로그를 시작했다. 이미 앞서 간 사람들이 많은 블로그 세상이기에 늦은 감은 있다. 하지만 블로그를 해서 알게 된 것이 많다. 브런치 플랫폼도 그중 하나이다. 이제는 시대적인 흐름에 맞게 나만의 콘텐츠를 가지며 살아가고 싶다.
경제 블로그로 시작해서 지금은 도서 블로그를 하고 있다. 고시 수험서를 놓으면서 모든 공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한동안 책을 멀리 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책 알레르기가 생겨버렸는데 블로그 활동이 책을 가장 가까이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2년 3개월 동안 운영해 오고 있고, 애드센스를 다는 티스토리도 했다. 블로그는 1년간 1일 1포를 기본으로 했지만, 도서 블로그를 하면서 한 달 20포 수준으로 하고 있다. 독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티스토리는 한 달 1개의 포스팅으로 유지만 해오고 있다. 이번에 100달러를 달성했다. "FOMC 점도표 읽는 법"이 지난해 내용임에도 조회수가 터졌다. 블로그 글쓰기도 글쓰기지만 나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유튜브를 개설하고 싶어 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라디오 DJ 같은 진행인데 노래의 제약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 노래도 부르고 싶고, 책, 생활 정보, 투자 이야기하며 나만의 코너를 운영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벌써 노래 부르며 나만의 코너를 진행했을 것이다. 꾸준하게 운영할 수 있는 나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가계부나 독서 결산 등도 생각해 보긴 했다. 물론 아직은 더 갈고닦아야 한다. 1년 10개월 동안 지속하고 있는 독서에 몰입하고 있다. 독서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서 계속 가보겠다. 그러다 보면 술술 소설이 써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