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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늘 Oct 26. 2024

여한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안녕, 나야.

 어떤 삶을 살고 있니? 뭘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니?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없었나 봐. 막연하게 남들처럼 때가 되면 일하겠지, 결혼하겠지, 애를 낳아서 키우겠지, 잘 살겠지 정도였어. 스스로 경쟁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나는 그런 자리들이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을 했어. 수험생활을 짧게 끝낸 것도 그 자리가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남편 역시 경쟁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워커홀릭은 아니었어. 직장에서는 개미가 되고, 집에서는 베짱이가 되는 사람이었지. 어쩌다 설거지 한 번 한 것을 설거지도 해줬다고 생색내는 사람이었어. 집안일은 당연하게 내가 하는 거라고 생각해도 늘 우리를 부르는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었어. 남편이 중간에서 전달하는 말도 문제였어. '서로 돕는다'는 의미였다면 좀 더 나았을까? 나는 아무것도 안 받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지만, 시부모님은 주시는 것 없이 당연하게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성격이셨어. 오히려 우리에게 해달라고 하는 게 많으셨어. 아들 키운 고생과 보람을 보답받고 싶은 심정이야 알겠지만,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런 며느리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시댁에서 밥하고 청소해 봤니? 


 예나 지금이나 성공한 딸 가진 부모님들이 호강하는 시절이지. 물론 가부장적인 마인드로는 자신보다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아내를 원하지 않겠고, 장서갈등도 생길 수 있겠지만, 결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면 문제 될 것이 없겠지. 1965년생의 이나가키 에미코 씨도 퇴사 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혼자 살아가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보여.








 평생 화목한 원가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의견도 발생하고,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도 다르기에 다툼이 생기기도 하겠지. 가족 사이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존재하니까. 법륜 스님이 늘 하시는 말씀 중에 상대의 덕 보려고 결혼하지 말라는 것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부모님처럼 우리의 가정을 함께 이루어간다는 의미가 컸어. 그래서 아들, 딸 낳고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말도 들었지. 내 명의 종잣돈 통장도 있고, 내 명의로 아파트 분양도 받았어. 남편월급으로 알뜰하게 살림하며 가정 경제의 관리를 담당했었지. 서로 돈을 더 벌어 오라고 한 적도 없고, 있는 범위에서 만족하며 사는 성격이었어. 


 시부모님께도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 하실 필요도 없고 건강을 돌보시라고 말씀드렸어. 그런데 사람은 바뀌지 않더라. 살던 대로 살게 되는 것 같아. 자식들조차 병원비가 더 들어간다고 말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지. 고집, 아집, 소신, 신념 어떤 것에 속하는 것일까? 남편의 대가족 월드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남편에게도 답답함이 생겼지.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는 성품이라서 그런 역할은 아예 기대할 수 없었어. 손해를 보고 참고 살아가거나 내가 나서야 하는 상황인 거야.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지훈 변호사가 <아는 변호사> 채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싸움을 회피하는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이 있다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받는 일인지 공감받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되었어.









 우리는, 적어도 나는 남편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더 이상 내가 잘해 줄 수 없어서 독립을 선택했지만, 결혼생활이 쉽게 정리되는 건 아니더라고. 서로 함께 고생한 시간이 있고 가꿔온 것들이 있으니까. 나는 형제들한테도 받는 건 많으면서 사위노릇 하는 게 뭐 있냐는 질책을 듣곤 했지만, 무슨 역할을 바라고 강요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어. 형제들에게 불만을 들었다고 남편에게 사위 노릇하라고 말한 적이 없어. 내가 며느리 역할에 고통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하는 일없이 받기만 하는 상황이 샘이 나서 그러는 것이니까. 그렇게 형제보다도 남편을 더 아끼던 나였는데, 이제 옛일이 되어버렸네. 각자가 각자의 부모님을 챙기고, 각자의 생활을 해나가고 있지. 3040 시절 결혼을 안 하고 직장일에만 매진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지금처럼 내 집은 있을까? 나의 아이들은 만날 수도 없었겠지. 항상 결혼 고민도 있었겠지. 모든 과정을 겪고 나는 혼자를 선택했지만, 그나마 부모형제들이 나의 선택을 존중해 줬어. 물론 우리가 다시 함께 잘살기를 바라시겠지.








 곁에 사람이 없으면 불안해할 정도로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불안 증후군'을 앓는다고 해. 그래서 원치 않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남들이 사는 물건을 따라 사며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떠는 시간을 보낸다지.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어. 자기력(自期力)을 키워서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갈림길이 생긴대.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기대는 힘을 키우는 중이지. 혼자라서 행복한 기분마저 느껴. 상암동 억새축제에서 수많은 가족들, 연인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 자유로웠어.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할 필요가 없으니까. 물론 사회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 줄은 알아야겠지만 살아가는 형태는 다양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힘들어하고 그렇게 욕하면서도 가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하거나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잘나고 잘 사는 부모님에게 종속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2022년 2월 24일 개봉)이라는 영화는 윌리엄 니콜슨 감독의 자전적 영화야. 대화가 중단된 부부의 29주년 결혼기념일에 남편은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고백을 하지. 아내는 결혼을 죽였다고 비난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하지. 아내는 활발한 성격이었고,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맞추고 숨죽이며 살아온 것 같았어. 1년 전쯤 우연하게 그렇게 되었다는 고백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고, 과연 그런 상대가 있는 것일까 의심도 들었어. 그런데 영화는 후반부에서 냉정하게 그 상대의 모습을 드러내지. 그러고 "불행한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만 남았다"라고 말을 해. 영화를 보는 내내 29년 동안 왜 서로 조율하지 못하며 살았을까 하는 질문이 생기더라고. 아들은 중립적인 입장이었고, "당신들이 견뎌내면 저도 견뎌냅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흐르면서 끝이 나. 아들의 "내 어머니, 나의 첫 여성, 나의 온기, 나의 은신처, 나의 자랑", "내 아버지, 나의 첫 번째 남성, 나의 스승, 미래의 내 모습"이라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삶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가 싶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좀 더 다르게 보일까? 힘들지 않게 살 수 있을까? 오늘도 답을 찾기 위해 책을 펼쳐. 우리는 어쩜 서로 행복을 만들어주고, 그 행복을 뺏기도 하면서 '새옹지마' 같은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이겠지.   

 이만 안녕, 마지막 편지를 써.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작품으로 찾아올게요.


상암동 하늘공원 서울억새축제 사진입니다. (글·사진 ⓒ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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