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기지개 켜며
나만의 고민을 나눌 수 없어서 더욱 느리게 흘러갔던 시간들, 지나고 보면 대체로 괜찮아지는데 왜 당시에는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결혼이란 무엇인가? 불행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똑같은 결혼생활은 없다.
부부 서로의 잘못이 아닌 결혼 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우리는 따로 지내고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한동네에서 따로 살면서 어린 자녀를 공동으로 돌보는 가정도 있다. 우리의 경우는 자녀가 너무 어리지도 않고, 한동네에 살 이유도 없다.
내가 남편에게 부러운 것은 젊은 시절의 노력으로 나이가 들수록 직업적으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점이다. 바쁜 시기만 아니면 워라밸이 보장되는 직장생활에 장남 역할만 하면 되는 삶의 모습이었다. 나야말로 살림 다하고, 아이 다 키우고, 저축해서 아파트 분양까지 받으며 자산을 불렸는데 오히려 며느리 역할만 점점 늘어나더라. 물론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달콤함도 있지만, 나를 위한 지출은 하지도 못하겠더라. 아파트 계약을 하는 순간부터 얼마나 아끼고 모으며 이사하는데 온 힘을 다했던가. 한없이 소진된 나는, 없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유독 자기 자식이 세운 공만 크게 보는 시댁 식구들이 있고, 같은 직장에 다녀도 자기 자식 일하는 것만 내세우는 시댁 식구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물론 요즘은 여자 쪽 집에서 우리 자식도 잘 버는데 하면서 결혼이 파토 나는 경우도 있더라. 온통 돈을 버는 사람, 돈을 버는 일만 대우를 받는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여성이 직장 생활을 계속하려면 자녀 출산과 양육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 때 인연과 서로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서 결혼을 했고, 아들과 딸을 출산하면서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같이 살지만 않을 뿐 우리만 찾는 시댁 상황은 나를 병들게 했다. 아무리 장남이라도 다 그런 것은 아닐 텐데 유독 심한 건 일손이 필요한 환경 탓도 있다. 아이들 키우는 건 일도 아니고, 며느리는 당연하게 일을 도와야 한다는 시댁 여건에서 나중에는 숨조차 쉬기 힘들더라.
강남처럼 조기교육, 영어유치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화센터나 도서관을 데리고 다니며 놀이 위주의 학습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시댁에서 보내는 주말이 많았고, 쉴 틈 없는 생활에 지쳐만 가더라. 간혹 다른 지역으로 체험학습을 간다 해도 시댁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아이들 키우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제일 힘든 일이라고 말해주는 시댁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감동의 감정이 생겨서 시댁과의 관계도 좋아졌을 것 같다. 요즘 세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몰라서 그러실 수는 있는데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힘들게 살았던 시누이들의 푸념도 들어야 했다. 한마디로 아들과 딸의 차별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장남으로 모든 혜택을 다 누렸다고 하는데 정작 결혼할 때는 별다른 것도 없더라. 결혼비용도 서로 비슷하게 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받은 것 없이 주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며느리라서 당연하게 노동을 제공해야 했다. 제사만 5개였다. 십 N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이라도 따듯한 말이나 인정을 받았더라면 화병은 나지 않았을까? 물론 나도 싹싹한 며느리는 아니었다. 원래 사람들한테 잘하는 성격이 아니다. 나대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며느리 사표였다. 다른 며느리를 얻으실 수 있는 기회라도 드리고 싶었다. 그 정도의 각오로 나는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연고 없는 곳에서 텃세도 힘들고, 시댁도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했다. 공부만 잘했지 가정을 꾸려가는데 지혜롭지 못했던 남편도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없더라. 서로의 한계만 확인할 뿐이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 동안 서로 쉼표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여건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이번에 아들이 나의 집으로 왔다. 지거국으로 진학할 줄 알았는데 인서울 대학에 가겠다며 재수 중이다. 학원 비용은 남편이 부담하고 나는 주거 비용을 부담하는 셈이다. 나의 생활비가 두 배로 늘었다. 그래도 열심히 해서 목표한 대학에만 가준다면 서로 고생한 보람이 있을 것이다.
적당히 지난날을 돌아보고, 미래 계획을 세우며 지금 현재의 시간을 잘 쓰고 싶다. 사는 동안 덜 아프게 잘 먹고 잘 걷고 잘 자며 잘 지내고 싶다. 아들의 모든 시간도 응원한다.
글·사진 ⓒ별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