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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자녀부부의 매개체

부부의 끈

by Jessmin

무자녀부부의 삶엔 다이내믹한 변화가 없다.


혼인 신고를 했고, 우리만의 보금자리가 생겼다.

무수한 대화와 공존을 통해 닮아가는 세월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은 '아이'라는 쓰나미급의 터닝포인트에 비할 것이 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부들은 결혼 후의 진짜 삶은 출산 후부터라고 한다.

부부의 의미가 더 넓어지고 깊어지며 전우애 같은 감정이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들을 가족으로 이어주는 매개체, 부부의 끈 '그들의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만난 한 친구는 결혼 후 아이를 갖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대학에서 만난 이들의 우선순위는 취업이었음에도 그녀에게 있어 이 주제는 꽤 중요해 보였다.



"부부한테 아이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


"왜?"


"큰아빠가 결혼하고 10년 넘게 아이가 안 생겼거든. 그래서 다른 여자랑 살림 차리고 살다 거기서 아기를 낳았어. 어느 날, 그 여자가 큰엄마를 찾아간 거야. 아이를 낳았으니 이혼해 달라고."


"그래서 이혼해 주셨어?"


"위자료 주고 결국 이혼했어. 그러면서 난 갑자기 큰엄마가 바뀌게 된 거지.

둘 사이가 어땠는 진 모르겠지만 큰아빠는 바람을 펴서라도 아기를 가졌으니 잘 된 거지. 지금 그 집 자식이 벌써 중학생이야. 불륜으로 시작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부부사이의 끈은 아이라고 둘은 여태껏 잘 살고 있어."


"글쎄.. 정말 아이가 부부의 끈일까? 전처와 아이가 생겼다면 그분은 바람을 안 폈을까?"


"그럴 확률이 높지 않을까? “


그녀는 마치 그들의 이혼의 근본적 원인이 임신이 되지 않은 큰아빠의 전처 때문인 듯 말했다.



당시 친구의 큰아빠를 대놓고 욕보일 수 없어 속으로만 생각했지만

‘과연 그는 전처와 아이가 있었다면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불륜은 자녀유무와 관련이 없다.

그저 필놈필 (바람피울 놈은 핀다)이다.


그들의 이혼에서 유책 배우자는 그녀의 큰아버지다.

여기서 아이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헤쳐나가자는 부부의 약속을 저버린 순간부터 그들의 관계는 금이갔으리.


아이가 부부의 끈이라는 생각엔 많은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실상 믿을만한 매개체는 부부 본연의 관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아 키운다.' 이상으로 보다 복잡한 것들이 존재한다.

여자와 남자가 만났지만 건강상의 이슈로 아이라는 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좀 더 나아가 여자와 여자가 만날 수도 남자와 남자가 만날 수도 있다.

또는 부부가 되어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모두는 부부 사이를 지속하기 위해 요구되는 신뢰와 이해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아이라는 끈이 있을지라도 "애 때문에 참고 산다"며 서로를 미워한다면 그들의 실질적 관계는 파탄에 이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그들의 끈은 이미 너덜너덜하여 쓸 수 없는 끈이 된 것이다.



자연스레 무자녀 부부와 유자녀 부부를 다른 차원에 두고 본다.

그러나 둘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부부의 끈'일 것이다.

둘 사이의 끈이 서로에 대한 사랑, 신뢰, 이해 등을 재료로 한 견고한 끈이 없다면

그 어떠한 끈도 부부를 끈끈하게 붙잡아 줄 수 없다.

자녀유무를 떠나 부부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애처로워한다면 그것만이 진정한 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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