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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3040세대, 5060부모

by Jessmin

인생의 행운을 나열하라고 한다면 선뜻 무언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선택하지 않았지만 거저 얻은 행운은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

직접 선택 한 행운은 현재의 남편을 만난 것 정도이다.


유학을 보내주고 경제적 지원을 아낌없이 키워주셔서 행운이라 믿는 것일까?

감사한 부분이지만 이 때문은 아니다.


부모님은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키워주셨고,

남편은 그런 나를 여전히 '나'로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만나는 빈도는 극히 줄어든다.

20대엔 연애, 학점, 취업등의 관심사를 얘기했다면

요새는 자연스레 재테크, 부동산, 그리고 결혼이야기에 한창이다.


유학시절부터 깊은 우정을 이어온 삼총사가 있다.

그중 하나는 최근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다.


27살에 결혼한 나와, 곧 결혼을 앞둔 다른 친구가 그녀의 결정에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녀에게 결혼과 손주를 압박하기 시작한 부모님이 그 이유였을 수도 있다.


적지 않은 돈을 결제했으니, 그녀도 좋은 남자를 만날 거란 희망에 부풀어있다.

그녀는 요새 유행인 육각형 남자를 만나겠다는 일념을 갖고 있다.


육각형 남자는 외모(키), 성향, 학력, 자산, 직업, 집안들을 이었을 때 꽉 찬 육각형이 되는 남자를 말한다.


내가 결혼하던 당시엔 육각형 남자라는 말이 없었다.

오랫동안 연애하고 사랑하던 남자를 나노단위로 쪼개서 평가해 볼 생각 또한 없었다.


그의 대한 확신이 있었고, 아니면 말고라는 당돌한 생각 또한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이런 사람들이다.

결혼을 하겠다 하니 예비 사위의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딸의 결정을 믿고 지지했다. 그리고 결혼하겠다 하니 행복을 기원했고

살다가 아니면 돌아오란 말을 했다. (그들은 여전히 내 방을 꾸며놓고 치워놓는다.)


어디 회사를 다니는지, 어디 대학을 나왔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재산은 좀 있는지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부모님은 둘 다 나름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의 핵심이 아니란 것을 진작 깨달은 것이다.


결정사에 등록한 친구의 부모님은 조금 달랐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그녀는 당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따라 시작했다.



"너는 왜 유학까지 갔다 와서 그런 일을 하니?"


"왜요? 제 친구도 같이 유학 갔다 와서 하고 있어요. 그 친구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그 친구는 너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독과 같은 존재구나. 그건 루저들이나 하는 짓이야.

네가 루저니? 내가 너 그런 일이나 하라고 유학까지 보낸 줄 아니?"



그녀는 부모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내게 고주알미주알 얘기했다.


사실 이 얘기를 듣고 상처받아야 하는 사람은 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았다.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자녀의 선택을 온전히 지지해 주는 부모가 있음에 안도했다.


이것이 나의 흔들리지 않는 첫 번째 뿌리였다.


모두가 취업을 준비할 때,

묵묵히 지지해 주던 두 번째 기둥은 남자친구(현 남편)였다.


"쟈스민, 나 또한 예전이었다면 네가 취업하지 않고 다른 일을 시작하겠다 했을 때 걱정 했을지 몰라."


"근데 왜 걱정하지 않아?"


"그게 답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나도 취업을 해보고, 이직도 여러 번 해봤지만 이 삶이 결코 정답은 아니더라고. 너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 네가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하다면 이미 대부분의 사람보다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거야."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 이 남자는 소위 말하는 육각형이 아닐 수도 있다.

전혀 개의치 않다.


부모님은 자녀에게 결혼을 가지고 압박한 적도,

무자녀를 살겠다는 나의 의견을 판단하거나 비판한 적도 없다.

각각의 행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지지하신다.


부모님과 남편은 나의 뿌리이자 기둥이다.

이것은 결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들이다.


나의 친구는 결정사에 등록하면서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곳에선 집안의 자산, 노후 확보, 부모님의 학벌 모두를 평가하는데 그것들이 그녀에게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고.

그러나 나의 소망은 그녀가 조금 더 내부적인 것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그것이 그녀에게 더욱 건강한 자존감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임을 확신한다.



8-90년 대생들 중 엄한 부모 아래서 여러 상처를 받으며 큰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부모의 통제와 지휘 속에서

더 나은 대학, 더 좋은 회사, 더 높은 연봉, 그 이후엔

육각형 배우자, 남들보다 뛰어난 내 아기를 위한 희생을 정답이라 여기고 살아갈 수 있다.


진부한 말이지만, 세상에 정답은 없다.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한 적 없고

부모에게 예비 신랑과 결혼을 허락받기보단 통보했지만 현재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한국의 혼인율과 출산율의 하락의 원인을 주로 SNS에서 찾는다.

화려한 세상, 오마카세, 호캉스, 해외여행 이것들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한 결과라고 믿겠지만,

나의 개인적 의견은 그렇지 않다.


5-60년대생 부모 아래 태어나 자란 우리 세대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기엔 어려움이 있는 환경이었다.

평생을 비교와 경쟁에 찌들어 자랐다.

그들의 기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녀는,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라도 못된 표현을 듣고 비난당했다.


난 이들이 외부적 요인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삶의 내부적 요인을 조금 더 바라본다면, 자연스레 회복된 마음이 그들을 다음 단계로 이끌 것이라 믿는다.


정작 사랑이 없는 육각형은 그저 ‘무‘에 불과하다. 나의 소중한 친구 또한 좋은 배우자를 만나 삶의 깊이를 알아가며 살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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