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이 필요한 우리
직업 특성상 어린이, 청소년, 어른들과 자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가끔 희망을 보기도, 또 그 반대를 경험하기도 한다.
아끼는 19살의 소녀가 있다. 그녀가 약 16살 때부터 만나기 시작했고, 그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그녀는 작년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떠났다.
현재는 본인의 꿈을 찾아가는 여정 안에 있다.
그녀는 학교를 가지 않아 망가진 수면습관과 치열하게 살지 않는 현재를 불안해하며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때마다 잔뜩 철이 든 척 어른스러운 면모를 뽐내며,
"괜찮아. 지금 이런 시간이 필요해.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런 걸 생각해 볼 기회가 없잖아.
나도 학창 시절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몰랐어.
당시엔 ‘대학‘이라는 목표를 두고 그것을 쟁취하면 위너, 아니면 루저라는 편협한 생각으로 살았어.
조급해할 필요 없어. 지금은 그저 성찰하는 시간이라 생각해 봐.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워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괜찮아.
대신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꾸준히 생각해 보고 가끔 환경을 바꾸고 환기해 보며 스스로에게 집중해 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가져본 시간이었다.
그 또한 당시, 어떤 위기를 겪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성찰 없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그녀는 마침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2년 넘게 알고 지낸 5학년 어린이가 있다. 그녀는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야무진 아이이다.
그녀의 표현력에 감탄을 자아내는 순간이 많다.
“바이올렛, 네 꿈은 뭐야?”
“쟈쓰민, 전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어요.”
"어른들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지.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일은 하기 싫은데, 돈이 많으면 재밌게 살 수 있잖아요."
아이들 사이의 insdie joke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농담)에 진지한 충고를 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의 말이 그저 상대를 웃기기 위한, 유머를 한가득 담은 대답이란 것 역시 알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깨닫게 된 점이 있다.
아이들의 농담은 사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들의 사회(학교)에서 먹히는 농담, 부모를 한바탕 웃기게 만든 농담들이다.
무엇이 아이들이 그런 농담을 하게 만들었을까?
오래 알고 지낸 한 30대 남성분은 명실상부 최고의 스펙과 배경을 가졌다.
평소 대화를 통해 괜찮은 인성을 가진 바른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발발했던 2022년 2월 무렵이었다.
"쟈스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시작했다는 뉴스를 봤나요?"
"네, 22년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기 힘드네요. 이제 평화의 시대는 끝이 났나 봐요."
"아니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죠.
전쟁 수혜주들이 몇 개 있어요. 전쟁이 오래갈 것 같은데 얼른 매수하는 자가 살아남는 거죠."
"그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쟁으로 죽어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서 수혜를 얻는다니.."
"6.25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한반도에선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나 다른 나라들에선 고기반찬 먹으며 잘 살아갔어요.
그냥 현실인 거죠. 발 빠르게 움직여야 살아남아요."
놀랍게도 그는 전쟁 관련 주식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었고, 30대의 이른 나이로 은퇴를 했다.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가 죽어나가기 시작한 때에도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는 그 전쟁 속에도 각자의 이득을 위해 살아간다.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얼굴도 모르고 가본 적도 없는 땅에 사는 누군가를 위해,
한 번은 진심으로 마음 아파해 줄 수 있는 인류애가 필요하다.
그건 MBTI가 F이건 T이건 상관없다.
삶에 대해 사색하고 진정한 길을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에겐 누구에게나 필요한 자세이다.
나를 포함 한 많은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자신을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한 길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돈이 우리가 함께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란 것을 잊은 채
그저 목적이 되어 살아가기도 한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자란다.
어른들의 행실, 어른이 만든 콘텐츠를 보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배운다.
더 나은 것을 생각하고 보여주는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요새 아이들의 수준도 자연스레 함께 상승할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고 가족을 늘리지 않는 것은 내겐 불확실성을 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통제할 수 있는 삶은 내게 안정성을 선물한다.
이것이 나에게 욕심을 덜고 더 나답게, 부담 없이 성찰해 가는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이 삶이 자주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더 긍정적 영향을 끼치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스님들과 신부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종교적으로 다른 이유들이 존재한다)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들을 다져가며,
앞으로도 만나게 될 아이들의 삶에 보다 나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가 되길,
또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