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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Aug 11. 2024

루프탑이 된 다락방

다락방의 장례식 (9)

여자는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움츠렸다.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은데 주변이 워낙 어두워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이윽고 루프탑 건물에 도착한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급하게 나오느라 여전히 걸치고 있던 하얀 약사복 사이로 찬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계세요?”     


옥탑방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했는데.”     


“서운하구나.”     


남자는 씩 웃었다.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착각하지 마세요.”     


여자는 몸을 떨었다. 추위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다고 당신이 나를 속이고 이용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이렇게 나를 도우러 왔잖니.”     

김호봉은 행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면 됐어.”     


“내가 여기 당신을 도우러 왔다고 생각해요?”     


여자는 천천히 옥탑방안을 둘러보았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가구 몇 개. 바닥에 딱 붙은 매트리스 토퍼 위로 이부자리가 정갈하게 펴져 있었다.     


“나는 나와 내 가족을 구하러 온 거야.”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의 손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그림자들이 광선 주위로 모여들었다. 여자는 김호봉으로부터 쉴 새 없이 나오는 그림자들을 베고 또 베어냈다. 그림자들은 기괴한 이빨을 드러내며 절규했다.     


“헤비메탈의 그림자를 내가 다 잡아먹었어.”     


김호봉은 미친 듯이 웃어대며 몸을 흔들었다.     


“지난번에 지구를 구할 때 너를 돌로 만들어 거의 죽일 뻔했던 녀석이지. 이번에도 다를 건 없을 거야.”     

여자는 말없이 그림자들을 계속 베어냈다. 온몸이 불타오기 시작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만두라니까! 넌 나를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     


그때 그림자 하나가 여자의 손아귀를 벗어나 몸을 숙여 덮쳤다. 여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김호봉은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갔다.     


“대학생 코찔찔이 시절부터 뒤치다꺼리를 해주며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김호봉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네가 나를 벗어나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자가 이를 깨물었다.     


“넌 나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갔어. 내 가족, 내 청춘, 내 건강, 내 모든 걸! 이제라도 새 가족과 새 인생을 찾아

서 행복하려는 게 그렇게 나빠?”     


“넌 내 거야!”     


그가 으르렁거렸다.     


“내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하라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넌 그걸로 된 거야. 네 존

재가치는 그런 거야. 나의 하위 품목, 나의 하위 항목! 나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는 존재란 말이다.”     


김호봉은 여자의 턱을 움켜쥐었다.     


“이 간단한 걸 왜 모르지? 왜 여기서 벗어나려는 거야?”     


“…글쎄.”     


여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김호봉이 몸을 피할 새도 없이 약사복 주머니에서 꺼낸 것을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아마 내가 이걸 발견해서가 아닐까. 기억나? 다락방의 바나나야.”     


김호봉은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곧 그의 몸이 뒤틀리고 쪼그라들었다. 김호봉이 절규하는 사이 여자는 가까스로 몸을 밀어내 옆에 놓인 이부자리로 향했다. 이불을 움켜쥐어 김호봉에게 던지자 김호봉은 이내 이불과 하나가 되어 더욱더 구겨졌다.     


마침내 비명이 잦아들었을 때, 그가 서 있던 곳에는 구더기 한 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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