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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Aug 15. 2024

다락방의 장례식

다락방의 장례식 (10)

트럭이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트럭에서 내린 남자 뒤로 '피시천국 - 수족관 시공, 청소 전문'이라고 적힌 글자가 보였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남자는 오래된 탓에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마침내 다락방에 도착하자 남자는 먼지가 자욱한 공기를 손으로 휘적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저 왔어요.”     


그가 말을 건 영정사진 앞에는 비어 있는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남자는 봉지에서 바나나를 꺼내 그릇에 올려놓았다.     


“... 죄송해요, 아버지.”     


남자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향에 불을 붙였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사진 속 얼굴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절 원망하지 마세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남자가 말했다. 그는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더니 이내 절을 했다.     


“그 여자가 저를 죽이려고 했다고요. 도와주지 않으면 저도 이미 죽었을 거예요.”     


사진 속 김호봉은 대답이 없었다.     


“… 가끔은 생각해요. 만약 할머니가 아버지를 학대하지 않았다면, 나도 아버지에게 학대당하지 않았을까?”     

그는 두 번째 절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락방 안은 물건으로 가득했고, 어질러진 상자들 사이에서 그는 익숙한 옛 일기장을 금세 찾아냈다.     


“할머니가 그랬다고 하셨죠?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넌 내 자식이니까, 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내 말을 듣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요.”     


남자는 일기장을 몇 페이지 넘기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났고, 아버지는 저를 위해서 할머니를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아버지를 위해서 존재하니까요. 더 이상 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서 존재할 수는 없었죠, 이제 아버지도 지배자가 된 거잖아요.”     


남자는 일기장을 내려놓고는 제사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묘한 얼굴로 영정사진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그의 앞에 놓인 바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위해 할머니를 살해했던 그 아줌마 신자… 아직도 기억해요. 완전히 아버지에게 미친 여자였죠. 자

기 딸도 버리고 살인도 불사하는 사람. 제가 교도소 간수로 있으면서 그 여자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지도 잘 봤어요. 그 여자는 아버지를 위해 계시를 이뤘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다 갔어요, 아버지.”     


바나나를 천천히 베어 문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그런 아줌마의 딸이 저를 죽이려고 한 거예요. 은혜도 모르고요. 아, 사실 반쯤 미쳐있더라고요. 할머니가 계시던 요양원에 떡하니 들어가서는! 저에게 아버지와 있었던 일들도 다 들려줬어요. 참 지독한 인연이던데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 평생을 바치다니.”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남은 바나나를 마저 베어 먹고 남자는 껍질을 바닥에 던졌다. 바나나 껍질이 던져진 제사상을 한참 쳐다보다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명복을 빕니다. 할머니가 계신 그곳에서 부디 행복하세요.”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다락방을 나섰다.      


그 다락방은 루프탑에서 벌레를 잡은 아이폰이 발견된 곳이었다. 아이폰은 편의점, 아니 어항에 갇혀 있었다. 어항 속에 살던 물고기는 고양이에게 잡아 먹혔고, 고양이는 비밀을 하나 알고 있었다. 바로 다락방의 유일한 바나나는 썩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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