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을 넘어, 하루만 더…
하나님께서는 얼마 후 내 새끼를 하늘나라로 소풍 보내시려는 걸까…
그저 침묵만 하고 계신 듯하다. 나와 남편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기력하게 새싹이의 죽음을 기다릴 뿐, 답답하고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던 새싹이의 움직임은 서서히 죽어갔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새싹이 이 나쁜 녀석… 갔나 봐. 이놈 불쌍해서 어쩌지? 같이 발리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기로 한 놈인데, 왜 갑자기 안 움직이지?”
살려 달라고 버둥거리던 새싹이의 움직임이 고요해질 때마다 내 심장도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나는 잠시 잠이 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깊이 잤다.
눈을 떴을 때, 남편이 물었다.
“새싹이, 살아 있어?”
“아니… 새싹이 이 녀석 전혀 미동도 없어. 하늘나라로 소풍 갔나 봐.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새싹이가 갔어. 미안해, 여보…”
나는 엉엉 울었고, 남편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런데 잠시 후, 새싹이는 응답이라도 하듯 꿈틀거리며 아직 살아 있다고 신호를 보냈다. 시계를 보니, 의사가 말한 3시간은 이미 넘어 있었다. 오늘 새벽, 새싹이는 탯줄을 꼭 움켜쥔 채 엄마 뱃속에 매달려 있었다.
간호사를 불러 확인했을 때, 새싹이의 심장은 여전히 세차게 뛰고 있었다. 나는 항생제와 영양 수액, 자궁수축 억제제를 맞기 시작했다. 새싹이는 하루만큼 더 우리와 함께 있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붙잡아둔 하루가 고마우면서도, 새싹이가 견뎌내야 할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메마른 자궁 속에서 새싹이의 현실은 잔인할 뿐이다. 움직일 공간조차 없어 사지에 기형이 올 수 있고, 양수를 마시지 못해 폐는 쪼그라들고 있다. 탯줄이 눌려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기면 뇌 손상이 올 수 있으며, 터진 양막 사이로 세균이 스며들면 나와 새싹이 모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좁디좁은 5인 병동으로 이송되어 손만 바지런히 양수 없이 버틴 아기의 생존 사례를 검색했고 아침 회진 때 주치의에게 무양수로 35주까지 버틴 산모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내겐 그 사례가 기적 같은 희망의 끈이었다.
사실, 내 경우는 양막이 완전히 찢겨 양수가 다시 차오를 가능성이 없었다. 파수 시점도 태아의 폐포 형성 이전이었기에, 설령 살아남더라도 새싹이의 폐는 온전히 자라지 못할 터였다.
너무 작아 초음파 사진에서도 희미하게 잡히는 이 녀석이 겪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은 아프다 못해 저릿하다. 그래도 나는 엄마다.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버젓이 살아 있는 소중한 내 새끼를 유도분만으로 끄 잡아내어 내 손으로 거둘 순 없다. 절대 안 될 말이다.
1차 목표는 24주이다. 그때까지 버티면, 새싹이의 생존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건 아니다.
주치의도 24주까지만 버티면, 대학병원 전원 소견서를 써주겠다며 함께 견뎌보자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