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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마시고 감사로 토해내며..

양수야 차 올라줘..

by 새싹맘

하루에 세 번씩 체온과 맥박을 재며 감염 징후가 있는지 확인 받았다. 감염 예방을 위해 항생제도 투여되기 시작했다. 35주까지 버티려면 혈관을 아끼고, 활동을 최소화해 양수가 조금이라도 차올라야 한다.


소변줄을 꼽고 쓸쓸하고 창백한 병원 천장을 바라보면서 씩씩했던 나는 이내 마음이 약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양수 패드를 침대에 깔고 속옷도 탈의한 채 환자복만 입고 있다.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걱정되어 오신다는데, 내 처지가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수치스럽다.


머리라도 빗고 화장이라도 조금해볼까 싶어 남편이 가져온 소지품을 만지작거렸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산모 패드에 양수가 주르륵 쏟아져 내린다. 새싹이가 마실 물이 왈칵 빠져나왔나 싶어 심장이 철렁거린다.


거울 속엔 어제까지만 해도 태교 여행으로 한껏 부풀어 있던 직장인이자 행복한 임산부는 없고 눈물에 떡진 머리칼과 덕지덕지 눈곱 낀 얼굴을 한, 꼬질한 여자만 있다.


꼼짝 못하는 탓에 허리는 허리대로 아프고, 좀이 쑤신다. 눈을 잠깐 감아봐도 수액 바늘이 찌르는 혈관 통증이 느껴진다.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배는 더부룩했고, 수축 억제제의 부작용 때문에 손은 부르르 떨리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 부작용이 있으면 수축 억제제를 끊을 거라는 말에 아픈 속을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다. 새싹이가 지금 나오면 죽으니까..


코끼리 다리처럼 부은 다리를 풀어보려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본다.

그때야 알았다. 왼쪽, 오른쪽 자유롭게 돌아눕는 게 얼마나 큰 감사였는지.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

새싹이 덕분에 몰랐던 감사를 깨닫는다.


그러다 소등이 되면, 어둠 속에서 또 다시 걱정이 밀려온다. 내가 버틴다 한들, 고작 300그램도 안 되는 요 작은 놈이 과연 버텨줄 수 있을까?


300그램도 안 되는 이 작은 녀석이 살아남으려면, 양수가 차올라야 한다.
나는 매일같이 3리터의 물을 악착같이 들이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느라 식욕도 없고, 물 한 모금 넘기기도 버거운 몸이지만, 아기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먹고 싶은 의지가 없는데, 밥은 밥대로 챙겨 먹고 하루 3리터 이상의 음료를 마신다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결혼 전엔 45킬로도 안 되는 말라깽이였고, 시험관 시술 전까지도 47킬로그램을 유지하려 깨작깨작 먹던 내가, 이제는 괴물처럼 닥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있다.


마시는 물의 총량을 채우기 위해선 나름의 전략도 필요했다.
남편이 새벽에 소변통을 들고 병실과 화장실을 오가는 고생을 덜어주려, 저녁 8시까지는 2.5리터를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눈을 뜨자마자 물병을 붙잡았고, 저녁 8시까지 물병을 달고 살았다.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컵에 물을 채워 들이켰고 소변통을 갈아 달라고 간호사를 호출한 후 또 마셨다.
물 배로 속이 울렁거릴 때는 이온음료와 두유를 섞어가며 억지로 입을 축였다.
어쨌든 뭐라도 마셔야 했다. 그래야 새싹이가 움직일 공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니까.


그리고 체중.
새싹이의 몸무게를 늘려야 했다. 언제 세상 밖으로 나올지 모르는 이 녀석이 밖에서도 살아남으려면,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라야만 했다.

하루 세 끼 고단백, 고열량 식사를 하루 챙겨 먹고, 틈틈이 간식도 세 번은 먹었다. 수박 한 통을 로켓 배송으로 주문했고, 병원식은 병원식대로 먹으면서 친정엄마가 싸온 소고기 볶음과 삶은 달걀, 견과류를 따로 챙겨 먹었다.


냉장고는 미니 과일가게처럼 바뀌었다.
사과, 바나나, 딸기, 키위, 파인애플, 방울토마토까지..
엄마가 곱게 잘라서 투명 용기에 하나하나 담아온 과일들은 새싹이의 생명유지 간식이자 영양 수혈이었다.

누워만 있어서 입맛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국에다 밥을 말아 꾹꾹 눌러 삼켰다.
밥 한 톨이라도 남기면 새싹이 체중에서 1그램이 빠져 나갈까봐 아깝고 미안해서.. 꼭꼭 씹어 넘기다 눈물이 고였다. 속이 울렁거리는데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니까.


새싹이 체중이 1그램이라도 늘어난다면 나는 계속 버틸 것이다.


4화 절망을 마시고 감사로 토해내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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