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 꺼지지 않는 등불
밤새 나는 거의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배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또렷해졌고, 눈을 뜨면 휴대폰 화면 속 검색창이 나를 붙잡았다.
“22주 조산 시 즉시 NICU에 갈 수 있는 병원”
“극소 저체중아 수용 가능”
“조기 양막 파수 22주 전원”
단어를 바꿔가며,
순서를 바꿔가며,
같은 검색을 수십 번 반복했다.
바로 몇시간 전 핏덩이가 나왔고, 지금도 진통은 멈추지 않고 있고, 몸은 열로 달아올랐다.
이건 ‘혹시’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더 새싹이가 버텨줄지는 이제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조산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머릿속 계산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여기서는 안 된다.
소아과가 강한 곳.
22주 아이를 살려본 경험이 있는 곳.
고위험 산모를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줄 수 있는 곳.
새싹이가 혹여 며칠이라도, 몇 주라도 더 버텨줄 가능성도 아직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으니까.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세 곳을 번갈아 누르며 후기를 읽고, 초미숙아 생존 논문을 찾고, 블로그를 뒤졌다.
같은 문장을 밤새 다시 읽고 또 읽었다.
그 사이에도 몸은 불안에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미끈거리는 덩어리가 빠져나올 때의 그 기묘하고도 공포스러운 감각.
분명 내 몸에서 나온 것인데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
열이 오르며 등줄기를 타고 오한이 내려왔다.
이불 속에서도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도 아침이 왔고, 달력이 한 장 넘어갔다.
2025년 1월 1일.
나는 살아 있었고 새싹이도 아직, 살아 있었다.
남편은 내 옆에서 짧고 고른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나는 배를 움켜쥔 채 진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다시 휴대폰을 켰다.
검색.
저장.
메모.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다 남편이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잠시 나를 보더니 갑자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이제 새싹이는 22주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유산 아니야. 조산이라고... 22주까지… 정말 잘 버텼어.”
남편은 자랑스럽다는 말투였지만 그 눈에는 기쁨과 공포가 동시에 고여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나는 숨을 한 번 삼키고 말했다.
“나… 전원해야 할 것 같아.”
말을 꺼내는 순간 목이 메었다.
“내일 주치의 선생님 오시면 당장 말씀드릴 거야. 이제 시간이 없어.”
말이 점점 빨라졌다.
“여기서 기다리다 낳으면 새싹이는…
여기서는 못 살아.”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여보가 결정해. 여보가 버티고 있는 몸이니까.”
잠시 후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덧붙였다.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이제… 하나님께 맡기자.”
아침이 되고 남편은 잠깐 집에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오전 10시.
간호사가 패드를 갈며 말했다.
“피 섞인 양수, 손바닥 세 개 정도 나왔어요.”
그 말 한마디에 심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두유 다 떨어졌어요. 두유 좀 가져와줘요.
곧 답장이 왔다.
네. 건조기 세척했고 사과 깎아놨어요.
그 짧은 문장 안에 그가 감당하고 있는 하루가 다 들어 있었다.
회사, 집, 병원.
그리고 나와 새싹이.
이렇게까지 버텨주는데
정말… 살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얼마 후,
회사에서 복지 포인트 지급 문자가 왔다.
50만 원. 1월 1일 사용 개시.
지금 이 순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메시지이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세상 어딘가는 아직 나를 내일이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다시 검색했다.
24주 출산 생존 확률.
28주 출산 생존 확률.
32주 출산 생존 확률.
제발 24주까지만이라도 버텨줘 새싹아! 제발...
오후 4시 반.
다시 열이 올랐다.
38.4도.
몸이 으스러질 것처럼 아팠고
식은땀이 흘렀다.
타이레놀을 삼키고 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37.9도.
탈수.
양수 감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좋은 생각만 하자.’ 억지로라도…
남동생에게 뜬금없는 메시지를 보냈다.
월레스와 그로밋 언제 개봉해?
1월 3일이라는 답장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까지만이라도 버텨줘…’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이 잠시 집에 간 사이
어제보다 훨씬 큰 미끈거리는 덩어리가 한 번에 빠져나왔다.
이번엔 정말 컸다.
몸에서 힘이 빠졌고 식은땀이 쏟아졌다.
나는 거의 울부짖듯 말했다.
“여기요…
큰 게 나왔어요…
너무 커요…”
간호사의 얼굴이 굳었다.
“어제보다 훨씬 큰 핏덩이에요.
이게…
태반 덩어리인가…”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태반이면… 끝인데.
나는 그대로 엉엉 울어버렸다.
의사는 초음파를 보며 말했다.
“아기가 많이 내려왔어요.
그래도 심박수는 정상이에요.”
157. 158. 163….
숫자가 생명처럼 들렸다.
“양수가 계속 빠져서 자궁경부가 많이 약해졌어요.
임시로 거즈를 넣겠습니다.”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악!”
정말 별 고통을 다 겪는다.
“양수 수치는 이제 1 정도예요.”
“다시 찰 수는 없나요?”
“…거의 없습니다.”
양수가 없이 버티는 아이…
탯줄 꼬임.
사지 발달 장애.
산소 차단.
호흡 곤란.
뇌 손상.
살아는 있지만 너무 위태로운 상태.
그 와중에도 남편은 돌아오자 마자 말없이 가습기 물부터 갈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행동 하나에 나와 새싹이를 향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날 밤, 나는 여기저기 도움을 구했다.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에 댓글을 달고,
병원 정보를 묻고 새싹이가 살 길을 구걸하듯 찾았다.
내일은 이 병원을 떠나야 한다.
내일 옮기지 않으면 새싹이는 정말… 살 수 없다.
그리고 그 깊은 밤 나는 다시 두 손을 모았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 이사야 42:3
우리는 오늘도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붙잡을 힘도, 더 계산할 여유도 없습니다.
이제는 당신 손에 저와 새싹이를 맡겨드립니다.
부디 아직 남아 있는 이 작은 빛을 꺼뜨리지 말아 주세요.
작은 빛, 새싹아.
너는 아직 꺼져가는 등불이 아니란다.
지금도 분명히, 살아 있어.
살고 죽는 갈림 길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분은 의사도, 병원도 아니고 하나님이시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