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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Mar 29. 2024

6.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은 매우 다양합니다. 사실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적당히 균형있게 고통을 견디고 피하는 유형입니다. 이상적인 모습이지요. 평소에는 고통을 피해 다니지만, 필요할 때에는 견디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을 때, 우리는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겪는 놀랍도록 다양한 불편감을 피하곤 합니다. 가능하면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를 알게 됩니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말도 잘 통하고, 평범하게 생겼지만 볼수록 귀여운 구석이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만났지만, 만남이 거듭될 수록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마음 속에 그 사람의 자리가 생긴 것이지요. 일을 하다가 잠깐 쉴 때면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밥은 잘 먹었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 흠칫 놀랍니다. 내가 이런 인간이 아닌데, 싶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주말이면 늘 소파와 일체가 되어 밀린 과제를 하듯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웬 일인지 그 사람과 수다를 떨고 싶고, 새로 열었다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고 싶어집니다.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마음이 커 가는 동시에 두려움도 피어 오릅니다.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귀찮지만 불쌍해서 만나주는 것은 아닐까, 괜히 고백했다가 사이가 어색해 지지는 않을까, 등등의 생각이 몽글몽글한 기분에 초를 치는 것이지요. 


평소대로라면 여기에서 멈춰야 합니다. 관계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뱀 굴에 손을 넣는 것과 같다는 옛 군대 동기의 친구의 친구의 할아버지가 한 말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쉽습니다. 자꾸만 그 사람의 옆 얼굴이 떠오르고, 바람에 살랑이는 잔머릿결이 아련하게 그려집니다. 


이때 우리는 큰 결심을 합니다. 이번에는 모험을 해 보자. 힘든 일도 있겠지만 견뎌보자.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두 번째 유형은 고통을 너무 피하지 않는 유형입니다. 그런 유형이 있는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본능에 역행하는 부류이지요. 고통은 피하라고 존재하는 것인데, 반대로 고통에 다가서서 그 안에 오래오래 머무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럴듯한 사례를 상상해 봅시다. 시골에서 태어난 한 남자아이입니다. 이 소년은 지극히 평범해서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동네에 아이들이 여럿 있지만 이 소년의 존재감은 희미합니다. 어른들도 이 소년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늘 다른 이름으로 부를 정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평소처럼 동네 아이들이 공터에 모여 정신없이 뛰어 놀던 순간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근처에 있던 큰 자전거에 부딪혀 그만 넘어지고 맙니다. 존재감이 없던 소년도 그 아이에게 부딪혀 함께 넘어졌고, 그 과정에서 자전거에 실려 있던 커다란 짐이 두 사람 위로 쏟아집니다. 


원인을 제공한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이의 무릎과 팔꿈치에서는 이미 새빨간 피가 묻어나기 시작합니다. 존재감 없던 소년은 순간 넋을 잃고 맙니다. 강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옆에 쓰러진 아이가 너무 격렬하게 울었던 탓에 자신보다 그 아이를 먼저 도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짐 더미에서 그 아이를 끌어내어 먼지를 털어주고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힙니다. 그 모든 과정이 그저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그 아이가 조금 진정되자 옆에서 놀고 있던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 존재감 없던 그 소년을 칭찬하기 시작합니다. 와 너는 어떻게 그렇게 어른스럽냐, 아픈 것도 잘 참고 정말 대단하다, 정말 멋있다. 


처음입니다.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멋진 칭찬을 받는 것도 처음입니다. 존재감 없던 소년의 무릎에서도 피가 나고 있었고, 통증도 몹시 심했지만, 그것을 견디는 자신이 몹시 대단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짧은 경험은 소년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줍니다. 자신을 처음으로 빛나게 해 주었던 것은 고통을 견디며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이었기에, 소년은 평생을 그렇게 살기로 다짐합니다. 


소년은 고통을 느껴도 참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꺼리는 일도 기꺼이 나서서 하고, 그 과정에서의 고통을 오롯이 견디어 냈던 것입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소년을 칭찬했고, 고통을 견디는 것은 소년에게 당연한 일이 됩니다. 몸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피로감이 누적되어 이런저런 질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로 인한 고통조차도 견뎌냅니다. 때로는 고통이 너무 심해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조용히 진통제 같은 약을 먹었습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술을 마셨지요. 술을 마시면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된 소년의 몸은 많이 망가진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술에 의존하는 경향도 강해져 이제는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 되었지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의문을 품어보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보기에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렇고, 잘못한 일이라고는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고통을 과도하게 피하는 유형입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지만, 이 유형의 사람들은 너무 많은 상황에서 고통을 회피합니다. 


이번엔 한 소녀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소녀는 어려서부터 감정반응이 강렬했습니다. 재미있는 활동을 하면 자지러지게 웃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세상이 떠나갈 듯 울었습니다. 어떤 감정이든 반응이 격렬했고,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제지했습니다.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심각하냐, 제발 그만해라. 


그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소녀는 자신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슬픔이나 분노,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면 그 감정에 사로잡혀서 평소에는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하는 자신을 보며, 자신도 모르는 큰 결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점점 감정이 두려워졌습니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모든 감정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소녀는 감정이 유발되는 모든 순간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그렇게 감정을 자극하는 활동을 대부분 피했지요. 


그 결과 다른 사람과 만나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고,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소녀의 바람대로 감정이 유발되는 일은 전보다 줄었지만, 그만큼 그녀의 일상은 색깔을 잃어갔습니다. 그녀의 세계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그녀는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사례를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유형은 첫 번째 유형입니다. 적당히 피하고 적당히 견디는 삶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유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 두 유형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의아함을 느낀 분도 계실 겁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열심히 산 것뿐인데 어쩌다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일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맞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유형이 적응 측면에서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이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분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이 우리의 삶을 조각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것을 두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무지 때문에, 때로는 순간의 판단 오류 때문에, 때로는 주어진 것이나 환경이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유형을 갖게 되고, 그 결과를 감내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유형인지를 파악하는 것의 첫 번째 목적은 그간의 노고를 이해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칭찬해 주십시오. 수고했다고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격려하는 것이지요. 충분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두 번째 목적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과거의 경험과 선택에 의해 빚어진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꿀 수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조금 더 적응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모습을 일부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고통에 대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이란 무엇인지,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고통받는지, 고통을 어떻게 하면 잘 견딜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부터 그 내용을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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