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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Mar 27. 2024

5.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고통 없이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사랑하는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신비롭고 아름다우면서도 무자비하게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고통 없는 친밀한 관계는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금슬이 좋고 거의 다투지 않는 잉꼬부부도 못마땅하지만 서로 참아주는 영역이 있습니다. 가령 현관에서부터 한 꺼풀 한 꺼풀 허물 벗듯이 외투와 바지, 양말을 화장실 입구까지 벗어 놓고 가는 습관이라던지, 음식을 먹으면 꼭 한 숟갈 정도를 남기는 습관 같은 것 말입니다. 혹은 여행에 다녀오면 꼭 짐부터 풀어서 정리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습관이나, 주차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식당은 일단 거르고 보는 습관 같은 것일 수도 있지요.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10년, 20년 누적되면 그 또한 큰 고통입니다. 이러한 고통을 견디어 내야만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또 어떤가요. 우리의 몸이 원활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정말 어려운 것이 운동이라는 사실을 저는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운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꾸준히 운동을 한 것이라고는 고등학생 시절에 도장을 1년 정도 다닌 것과, 군 복무 기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한 것 외에는 특별히 없었지요.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40대 초반까지 그랬지요. 


  40대 중반을 눈 앞에 둔 어느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저보다도 약골인 한 친구가 갑자기 산에 가자고 제안을 했지요. 저는 은근히 친구를 깔보면서 너 같은 약골이 등산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럼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다시 내려오자고 당부하고 근처의 낮은 동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산골 출신이라 산을 타는 것은 자신이 있었던 저는 가볍게 계단을 올랐지요. 진입로의 가파른 계단을 5분 정도 올랐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산다람쥐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가는데, 웬 일인지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이 아닙니까? 오기가 생겨 무거운 발을 재촉하며 속도를 냈더니 이제는 심장이 방망이질을 시작하면서 호흡이 가빠졌지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마자 의식이 몽롱해지더니 급기야 다리마저 풀려버리고 말았지요. 결국 산은 커녕 진입로 계단 중간 지점의 공터에 있는 벤치에 한참을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부끄러웠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착하고 소중한 저의 친구는 안타까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지요. 


  저는 다음 날 바로 피트니스에 예약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이 뭐 별거 있겠어, 하는 오만한 생각이 놀랍게도 아직 조금 남았던 저는, 또 한번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저의 근육은 정말 보잘것없는 상태였던 것이지요. 


  운동을 하면 우리의 근섬유는 상처를 입습니다. 당연히 일정한 수준의 고통이 수반되겠지요. 그 다음이 놀랍습니다. 위성세포와 단백질이 손상된 근섬유에 붙어서 복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구된 근섬유는 더욱 튼튼해집니다. 저의 비루한 몸은 이 과정을 무수히 많이 거쳐야 했지만, 결국 정신을 잃지 않고 등산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한 상태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때로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유럽의 한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작은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걸어 나옵니다. 걸음걸이가 다소 부자연스러운 이 소년은 방금 전 선생님과 나눈 면담 내용을 떠올립니다. “수학 점수가 너무 낮습니다. 차라리 구두 수선 기술을 배우는 게 어떨까요?” 소년의 미래를 걱정한 선생님의 진솔한 제안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소년은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소년은 어려서부터 병약했습니다. 구루병이라는 희귀질환에 걸려 골반과 다리의 형태가 정상적이지 않았지요. 그 때문에 소년은 4살이 되도록 제대로 걷지 못했습니다. 폐렴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며 소년은 꼭 의사가 되어 자신과 같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지를 다졌지요. 


  그렇게 나름 충실하게 살아왔는데, 수학이 발목을 잡고 만 것입니다. 난감했습니다. 소년은 학업적 재능이 특별하지 않은 편이었기에 더욱 곤란했지요. 수학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소년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수학 공부를 포기하고 구두 수선 기술을 배우거나, 아니면 수학 공부에 전념해서 의사의 꿈을 키우거나. 


  소년은 후자를 선택하기로 합니다. 그에게 있어 의사의 꿈은 그만큼 간절한 것이었겠지요. 결국 소년은 수학 공부의 고통을 견디며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수학 성적을 끌어 올립니다. 심지어 반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받게 되었지요. 


  이후 소년은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소원했던 대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이라는 새로운 심리학 이론을 개발한 바로 그 정신의학자입니다. 국내에서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널리 소개되었지요. 


알프레드 아들러





  이제 정리를 해 봅시다. 고통에 대한 우리의 일차적 반응은 회피입니다. 고통 안에 그대로 머물러있지 않고 고통을 줄이려 하거나 미리 피하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그 자체로 분명한 기능을 갖습니다. 위험한 자극으로부터 일단 멀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니까요. 하지만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회피를 반복하면 고통이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적절히 고통을 견뎌내야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정리하면, 우리가 고통을 경험할 때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피할 때는 피하고 견딜 때는 견뎌야 하는 것이지요. 


  말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이 간단한 과제를 하기 위해 우리는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양하지요. 어떤 사람은 성공적이어서 균형있게 고통을 다루지만, 다른 누군가는 실패하여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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