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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Mar 31. 2024

7. 고통이 무엇이길래

‘고통’이라는 단어는 매우 친숙합니다. 고통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고통스럽다, 괴롭다, 힘들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듣는 이들도 그 말을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고통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하면, 고통이 고통이지, 라는 대답과 함께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한 눈총을 받게 됩니다. 고통이란 무엇일까요?


고통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는 ‘distress’ 입니다. ‘distress’는 ‘dis~’라는 접두사와 ‘stress’라는 명사의 조합이지요. ‘dis~’라는 접두사는 부정적인, 나쁜, 이라는 의미가 있어 긍정적인, 좋은, 의 의미를 갖는 접두사 ’eu~’와 대비됩니다. ‘Stress’는 일반적으로 어떤 자극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긴장 반응을 의미합니다. 정리하면, ‘distress’는 어떤 자극에 의해 유발되는 부정적인 신체적/정신적 긴장 반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스트레스(stress)에 대한 연구는 꽤 오래 전부터 진행되었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의학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는 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한스 셀리에


그에 따르면,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스트레스원(stressor)에 노출됩니다. 스트레스원은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는 다양한 자극이나 사건을 의미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일반적으로 실연이나 실직, 이혼, 질병과 같은 거창한 것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스트레스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아빠에게 들었던 말 한 마디, “요즘 살 찐 것 같다?”는 어떨까요? 길거리를 걷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흘끔 쳐다보면서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은 스트레스원일까요? 너무 사소해서 스트레스원은 아닐 것 같은가요? 어떤 자극이나 사건 때문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평소와 달리 어느 정도 긴장하거나 불편해졌다면, 그것은 스트레스원입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조차 민망하게 사소해보일지라도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긴장했다면 그것은 스트레스원인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자극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모든 자극이 스트레스원으로 고려되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자극 중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자극, 특히 우리의 안정과 균형을 위협하는 자극들이 스트레스원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트레스원은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합니다. “아 스트레스 받아”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하는데, 바로 그 상태가 스트레스 반응 상태입니다. 물론 의식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의 미묘한 스트레스 반응도 존재합니다. 어느 것이든 스트레스 반응 상태가 되면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효과적으로 안정과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어떤 반응이나 행동을 하기에 적절한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분노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해 손상되었다고 인식할 때 발생하는 감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일 수도 있고, 우리의 명예일 수도 있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애지중지하는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우리의 일부, 혹은 우리 자신이라고 여깁니다. 





우리 모두에게 핸드폰은 소중한 물건입니다. 핸드폰 기계 자체의 가치도 꽤 높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의 소중한 정보는 그보다 더한 가치를 갖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물건은 우리의 일부가 됩니다. 누군가가 핸드폰에 상처를 내면, 그것은 우리 몸에 상처를 낸 것과 비슷한 정도의 충격을 주지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의 몸을 보호합니다. 몸에 어떤 공격이 들어오면 일차적으로 방어를 하고, 추가적인 공격을 피하거나 억제하지요. 도망치지 않고 추가적인 공격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뭘까요? 그렇습니다. 공격입니다.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 너도 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공격을 하려면 에너지를 모아야 합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 모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때 사용되는 감정이 바로 분노입니다. 분노 감정이 유발되면, 우리의 몸은 싸움에 적절한 상태가 됩니다. 심장은 빠르게 뛰면서 온 몸의 근육에 피를 공급합니다. 호흡이 빨라지면서 필요한 곳에 산소가 적절히 공급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지기능은 오로지 상대에게 어떻게 공격을 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표정은 위협적으로 변하고, 눈빛도 달라집니다.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핸드폰에 상처를 낸 원수의 핸드폰을 날렵하게 가로채서 똑같이 상처를 냅니다. 상대는 바람같이 빠른 당신의 손을 미처 막지 못합니다. 성공입니다. 상대에게도 핸드폰은 동일하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방금 입은 상처로 망연자실한 상태입니다. 무엇인지 모를 뿌듯함과 만족감이 일어납니다. 당신의 몸과 마음은 다시 균형 상태를 회복합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스트레스 처리의 과정입니다. 물론 이 사이클은 한 번에 끝나지 않을 수 있고, 상대방의 스트레스 사이클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상처입은 상대가 다시 공격해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스트레스 반응은 상당히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분노와 같이 상대나 자신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행동을 유발하는 감정은 현대 사회에서 용납되는 수준과 방식으로 복잡하게 변형되기도 합니다. 




이제 스트레스원과 스트레스의 개념, 그리고 스트레스 반응 과정을 대략 이해했을 것입니다. 사실 스트레스 반응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우리가 속한 환경이 다양하고 복잡한 만큼 대응 시스템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스트레스의 유형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셀리에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크게 ‘distress’와 ‘eustress’로 구분됩니다. ‘Distress’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고통을 의미합니다. 반면 ‘eustress’는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식되는 스트레스를 의미합니다. 


승진을 예로 들어 봅시다. 좋은 기업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한 당신은 내년부터 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아주 좋은 소식이지요. 능력도 없으면서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상사놀이를 하며 이래라 저래라 했던 부장의 눈치를 더 이상 볼 필요가 없고, 장바구니에 담아만 놓고 사지는 못했던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기능성과 견고함이 뛰어나면서도 미학적인 아름다움마저 갖춘 최신 캠핑 장비를 살 수 있으니까요. 아주 좋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자극도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합니다. 긍정적 사건이기는 하지만 환경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지요. 환경이 변하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달라지고, 그에 맞게 우리의 시스템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히 긴장하면서 시스템을 수정하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스트레스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고요. 


사실 ‘eustress’와 ‘distress’의 구분은 임의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나의 자극이나 사건도 다양한 정서적 색깔을 띌 수 있고, 스트레스 반응의 강도에 따라서도 주관적 느낌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주제를 우리가 깊이 있게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고통, 즉 ‘distress’에 주목하면 될 테니까요.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는 스트레스 반응, 그것이 우리가 주목할 스트레스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다양한 스트레스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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