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 Jun 28. 2022

나는 뻘짓하는 나를 사랑한다.


나이 들어도 나의 뻘짓은 지칠 줄 모른다.


애도 아닌데 특이하고 신기한 게 눈에 띄면 그냥 못 지나친다. 다 구경하고 물어보고 경험해 봐야 한다. 특히 해외 패키지여행 가면 뿅뿅 사라지는 마누라 때문에 남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이드 설명은 들은 체 만 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틈만 나면 옆길로 샌다. 그저 낯선 이방인이랑 말 한마디 섞어보려고 일부러 가게 주인과 물건값 흥정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건 나를 '호기심 마왕'이라고 부르는 큰 애가 고쳐주길 바라는 뻘짓이다.


아직도 여물지 못해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선을 지니고 있다. 특히 왼쪽 옆자리 술친구는 침받이가 될 각오와 갖은 리액션에 몸살 날 각오를 하고 앉아야 한다. 게다가 감정은 변화무쌍하여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내 말에 내가 벅차서 웃다가  울기도 하며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면 아주 난리 난리가 난다. 이건 나잇값 못한다며  나를 취급하는  남편이 고쳐주길 바라는 뻘짓이다.


스킨십을 유별나게 좋아해서 사람을 만나면 일단 팔 벌리고 얼굴부터 들이민다. 아침에 봤을지라도 지금은 저녁이니 또 안아보자는 식이다. 너무 질척거린다며 둘째가 고쳐주길 바라는 뻘짓이다. 


가족이 원한다면 이 정도 요구는 쿨하게 수용할 수 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알아도 고치기 싫은 뻘짓을 고백하려 한다.


예나 지금이나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일단 호기심이 생기면 몇 년 치 재료 준비부터  하는 고약한 뻘짓이 있다.  수영장에 발 담그기도 전에 수영복 3벌에 여벌 수모까지 다 갖춘다. 그렇지만 춥니 덥니 강사가 이상하니 별 핑계 다 대다가 3개월이 가기도 전에 그만두었다. 볼링도 테니스도 마찬가지였다. 등록과 동시에 공, 라켓부터 샀지만 얼마 넘기지 못했다. 캘리그래피, 재봉,  붓글씨, 뜨개질. 제과제빵, 도예 등등 이외에도 생각조차 나지 않는 수많은 뻘짓거리를 배우다 관두었다.


결국 숱한 책과 장비만 남아있다.

베란다에는 십 년 넘게 쓰지도 않는 제빵기와 각종 빵틀이 트레이 3칸에 걸쳐 쌓여있다. 남편은 묵혀둔 장비를 볼 때마다 혀를 차지만 나로서는 언젠가 때가 되면 즉시 도전할 수 있는 만발의 환경에 흐뭇함을느끼는 바이다.


그런 뻘짓거리 중  하나가 그림이었다.

8년 전, 선긋기를 하는 입문 단계였지만 수채화를 근사하게 그릴 생각에 미리 회사별 전문가용 수채화 물감, 크기별 수채화 용지, 최고급 다람쥐 털 붓, 어반 스케치용 팔레트, 각종 색연필, 펜화 그림도구를 샀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시 3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바람에 물감조차 써보지 못했다.


이만하면 남들 눈에는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장비 욕심만 잔뜩 부리다 때려치우기 일쑤인 상습 포기러(?)라고 비웃을 정도다.


어째서 이런 뻘짓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뻘짓이 8년이 지나 내 인생의 취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주위엔 늘 그림도구가 있었기에, 그림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했고 언젠가를 소망하며 다시 붓을 잡게 되기를 희망했던 것 같다. 그러니 어찌 나의 뻘짓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그만 둘 지도 모를 일이라며 가능성에 의구심을 갖거나 돈과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을 따지느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더라면, 그림은 내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고로 나는 내 뻘짓을 후회하지 않는다.


뻘짓은 나다움을 말해주는 초콜릿 상자이기 때문이다.


요새는 나이 탓인지  뻘짓 스타일일도 좀 바뀌었다.

2년 전부터는 정토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새벽 5시 108배를 시작했다. 새벽 기상을 위해 총력을 다 한다. 일찍 잔다고 설거지는 쌓아두고 술자리는 될 수 있으면 피하다 보니 어지간한 모임은 사절이다. 일요일마다 온라인 독서 미팅한다고 집안일도  웬만하면 뒷전이다. 먼지가 안 보이는 건지 안 보이기로 한 건지 잘 모를 지경이다. 그래도 이건 남편이 가장 좋아해 주고 지원해주는 뻘짓이다.


가끔 열거한 뻘짓거리에 한 소리라도 듣는 날이면 침대 이불 킥하며 내일부턴 얌전하게 살 거라고 다짐해 보지만 자고 나면 싹 다 잊어버린다.


그래서 누가 내 뻘짓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어도 그냥 산다.




이전 04화 나는 무급 휴직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