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 Jun 16. 2022

그림에 대한 진심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과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은 나를 겸손하게 한다.
그래서 진심이다.


최근 읽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책에 따르면,

눈은 단순히 빛을 전파로 전달하는 렌즈 역할만 할 뿐이며 뇌의 후두엽 부위가 경험에 따른 예측으로 이미지를 만든다고 한다.


내 눈엔 빨강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갈색으로 보일 수 있는 문제이며, 눈이 본 사과 모양이 아니라 뇌가 경험으로 파악하는 범주화된 사과 이미지로 바꿔치기해서 본다고 한다.


심지어 정글 속에서 사는 어떤 원주민 부족은  원근감을 아예 못 느낀다고 한다. 평생 숲으로 우거진 밀림에 살았기 때문에 먼산, 가까운 산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읽었을때도 가장 놀라웠던 이야기는 역시 원근법이었다. 우리 현대인에게는 당연한 원근법이 1426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림에 적용되었다고 한다.


15세기에 살았던 사람의 눈이나 21세기 사람의 눈은 같다. 즉, 눈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동안 혼자 그림 연습하면서 읽었던 여러 드로잉북에서도 한결같이 눈의 관찰을 강조했다.


생각으로 그리지 말고,
눈이 보는 대로 그려야 한다


처음에는 이게 뭔 소린지 이해조차 불가했다. 조언자가 없었기에 그리고 또 그리다 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 이해가 됐다. 딱 눈이 관찰한 만큼만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자각하고나서야 형태감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눈이 좋아지고 나서 사물이 다르게 보이고 세상에 호기심이 생겼다.


수평선은 선인가?


 자연과 사물에 대한 경계가 희미해지고 틈새가 듬성듬성해져 좋았다. 뭐든 올곧고 뚜렷한 경계가 있어야 확신을 갖고 의구심을 풀던 나라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서 경계를 풀고 헐렁함을 사랑하면서 말랑말랑해져 가고 있다..


그림은 피드백이 즉각적이어서 감정의 바로미터이다.


그리면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이 그림에 그대로 묻어난다.

잘 그렸다고 뿌듯한 날, 보여주기 싫은 그림을 그린 날, 더 잘 그리고 싶은 욕심에 자꾸 지우다 그리기를 반복하는 날, 무작정 그리기 싫은 날, 남들과 비교하다 쭈글쭈글해지는 날, 뭐가 문제인지 보이지도 않는 날, 모델 사진만 찾다가 시간만 허비하는 날, 이미지에 따라 특별한 감정에 휩싸인 그날의 그 순간이 그대로 표현된다.


그래서 난 그림이 좋다.

나를 겸손하게 하고 나를 알아차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림에 진심을 담아 꾸준히 그려 나가고 싶다.

오늘도 그 길 위에서 나를 만났다.



독학으로 드로잉만 하다가 최근 수채화를 시작했다. 초록은 붉음과 푸름이 함께 공존할 때 자연스러워짐을 깨달았다.

이전 05화 나는 뻘짓하는 나를 사랑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