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재우고 남편 방에 가보니 남편이 얕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옷도 안 갈아입고 바닥에서 잠이 든 남편을 깨우려다 가만히 지켜보았다. 곤히 자고 있어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 코를 골며 자던 남편이 인기척에 눈을 떴다. "씻고 자. 이불 깔아놓을게" 남편은 아... 후... 숨을 깊게 내뱉었다. 잠시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남편은 일어나 의자에 앉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직장생활로 힘들어할 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가장이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로서의 책임은 선택이 아니라고. 그 말 뒤에 숨은 나의 말은, 그만둔다고 하지 말아 줘. 지금처럼 열심히 일해줘. 였다. 그만둔다고 말할 때마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만둔 이후에 찾아올 생활고를 상상하게 되었다. 남편이 일을 그만둔다면, 우리의 생활이 무너질 거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을 그만두게 될까, 하는 걱정이 밀려오곤 했다.
남편의 직장생활은 결혼 후 남편을 위한 일이 아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일이 되었다. 밥벌이 수단으로써의 노동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느낌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이자 버텨내야만 하는 일이다. 남편 자신의 발전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고 견디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뱉어내는 한숨에서, '나를 위한 건 없어'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언제 쉬게 해 줄 거야?' 가끔 남편이 하는 말이다. 농담처럼 느껴질 수 있는 말이지만, 남편의 표정과 말투는 나, 지금 간절히 쉬고 싶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를 향한 일말의 기대가 숨어있는 것 같다. 5년이면 돼?라고 말하며 햇수를 세던 남편이다. 5년 후에는 내가 돈을 벌고 자신이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하겠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부담스러우면서도 현실이 되길 바랐다.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안하게 온전히 쉬어보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일로 기쁠 수 있을까? 고생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이 기쁘길 바란다. 당신 잘하고 있어. 당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지. 당신 힘든 거 왜 몰라, 우리 위해서 힘을 내었으면 좋겠어. 고맙고 사랑해.라는 말이 내 속에 울려 퍼진다. 그런데 남편은 정말 이 말을 듣고 싶은 걸까? 이렇게 말해보기도 했지만, 매일 해줄 수 없는 이유는, 이 말속에도 남편 자신에 대한 희망이나 기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당신 희생하고, 쉬지 않고 일해 줘.라는 말인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힘을 내라는 말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남편을 온전히 쉬게 해 주고 싶다. 힘내라는 말보다, 당신 이제 쉬어도 돼.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레디 셋 고! 하고 앞으로 달려 나가기 위해서 매일 나를 예열시킨다.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도록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게 하는 것처럼, 매일을 그렇게 나를 준비시킨다. 글을 쓰는 이유다. 나만을 위한 동기로 글을 썼다면 매일 쓰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고, 메시지 없이 힘든 마음, 탓하는 마음만이 빙빙 돌았을 듯하다.
남편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까지 숱하게 남편을 탓하던 날들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남편이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당연했고, 육아나 살림을 함께 하는 것이 당연했다. 남편 입장에서, 자신은 일을 하고 아내인 나는 일을 안 하는데, 육아와 살림까지 같이 한다는 것이 억울한 듯했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내가 살림할 테니 네가 돈벌아와'라고 말하곤 했다. 남편이 나에게 불만이 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 미웠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늦은 육퇴를 핑계로 남편이 출근할 때 일어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것마저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남편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 알람을 맞춰 남편 출근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힘겹게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고,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남편을 쉬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이유다. 현실적으로 보면 남편이 일하는 것이 가정상황에 맞다는 것은 알지만, 시간이 갈수록 안쓰러움이 커져만 가 남편을 도와주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혼자만의 행복을 꿈꾸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새 남편의 어떤 모습도 사랑하고 싶고,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남편 역시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부부사이에 평온함이 찾아왔다. 가장 큰 기적은 남편을 향한 내 마음이 커졌고,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고마워하니 자연스레 마음을 주고받게 되었다. 남편의 잔소리가 있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언성이 높아지지 않았고 남편의 화도 금방 가라앉았다. 우리 사이에 이만큼의 변화는 놀라울 만한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감사의 효과라고 믿는다. 남편에게 다가가는 일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되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남편을 몽땅 사랑한다.
작가님들께 ⸜❤︎⸝
분주한 주말을 보내고 책상의자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6시쯤 일어나 남편을 배웅하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일찍 일어나 차분한 마음으로 아침을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셋째 아이를 보낼 땐 조급한 마음이었습니다.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업고 나와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 먹였습니다. 별로 입맛이 없는지 잘 먹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놓고 온 가정통신문에 사인을 해주려고, 아이가 교실에서 가져오면 학교 정문에서 사인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셋째 아이를 챙기다 보니 시간이 지체됐어요.
둘째에게 학교에 가서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내려오는 동안 동생을 챙겨 가겠다고 했는데, 아이는 시간이 늦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울상을 지으며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가까스로 셋째를 업고 나가 둘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핸드폰이 꺼져있었어요. 오늘까지 사인 받아가는 거라고 꼭 받아야 된다고 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동생 챙기고 있으니 빨리 가서 집으로 가져오라고 하니 학교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면 안 된다고 말하며 울듯 말듯한 얼굴을 하고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가 집 앞 횡당보도만 건너면 바로여서 간혹 첫째는 놓고 온 게 있으면 다시 집으로 왔기에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통신문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했는데 아이는 혼날까 봐 두려웠나 봅니다. 선생님께 말을 잘했을지 걱정입니다. 이래저래 월요일 아침부터 조급하고 짜증도 나고 화도 났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월요일에 연재해야 할 글을 올리기 위해 노트북을 켰습니다. 내 마음은 내 것이니 제가 잘 조절할 수밖에요. 후회가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아이가 돌아왔을 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봐야겠어요. 여러분은 어떤 느낌과 욕구로 일주일을 시작하셨나요?
저보다 즐겁고 행복한 한 주의 시작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