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필요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정리정돈이다. 잘 버리지 못한다. 옷을 버리려고 보면 오랫동안 입지 않았음에도 입게 될 날이 있을 것만 같다. 한꺼번에 버리지 못하니 그중에서 빨리지 않는 얼룩이 있는 옷들을 빼내고,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 가장 입지 않을 것 같은 것만 추려 봉투에 담았다.
아이들 방을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먼저 옷장 정리를 하라는 남편의 말에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공간을 만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옷장을 비우기 시작했다. 예쁘지만 사이즈가 작은 것들을 모아 큰아이에게 주었다. 옷이 없어, 타령을 하던 첫째는 갑자기 늘어난 반바지를 보며 뭘 입을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살을 뺐을 때 55 사이즈를 입었었고, 초등학교 5학년인 큰 딸이 입기에 얼추 잘 맞았다. 어느새 이리 큰 건지, 엄마 옷을 입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살을 빼기에는 자신이 없고 버리기엔 아깝고... 다행히 입지 못하는 옷들이 큰 아이 옷장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정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 정리를 해야 한다. 비단 집안 청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불필요한 생각은 버리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과 관점을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어느 길이든 가게 될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길도 가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도 내 인생에 큰 변화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머물러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성장하며 신체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외적인 변화들을 맞이하지만 엄마인 나는 키도 크지 않고 상급 학교로도 진학하지 않는다. 나이는 먹지만 학년은 오르지 않는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편안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때로 나에게 편안함은 독이 되었다. 벗어나고 싶지만 늘 해왔던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날 보게 되었을 때, 이런 것이 인간의 한계구나 라는 자각이 왔고, 바라는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습관화된 것을 탈피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아이들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춰주었고, 아이들을 탓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노력하고 변화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을 보며 내가 가진 습관이나 태도가 보였고, 나에게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학원선생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듣게 되면서, 아이들이 외모뿐만 아니라 부모의 성격과 태도까지 닮는다는 것에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잔소리로도 안 먹히겠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려우면 금방 포기했고 그로 인해 보일만한 결과물이 거의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시도를 했지만 과정 안에서 어렵고 힘들면 내가 가진 재능의 부족함을 알고 더 노력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교 공부가 어려워지니, 알 때까지 파고들며 공부해야 하는데, 힘들고 어렵다고 울어버릴 때 나도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미안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마무리도 결실도 없었다. 아이들이 될 때까지 노력하게 하려면, 내가 포기하지 말아야겠구나, 어려워도 더 해보자 마음먹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쓰다 보면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다. 소재나 표현에 있어 창의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읽기에 큰 관심이 갈만한 글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특히 소설을 읽다 보면 글의 분량에 있어서도 그렇고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니, 하지 못했던 주제나 내용, 표현들이 보이면 이건 내영역이 아니니까 내가 넘봐서도 안 되는 신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소설을 써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글의 영역을 분명하게 가르며 내가 쓰는 건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못 박듯이 말해왔다. 사실은 내가 그럴 능력이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더 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애썼다. 더 재미있게 생각할만한 주제를 던져보자는 생각으로 나를 더 깊이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고쳤으면 하는 모습들까지도.
남편을 분석하거나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분명히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감정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이 끊기지 않게 되었다. 파고들수록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언제 글이 막힐까, 생각의 환기를 위해 글쓰기를 쉬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쓰면 쓸수록 느는 것이 글일 수도 있겠다는 울림이 왔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 써보자고 나 자신을 격려했다.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이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 또한 글력을 늘리는데 우선순위겠구나 싶었다. 포기하지 말고 사유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글의 색깔을 만들어 나간다면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글이 막히면 쓰는 재미마저 사라져 버려 의욕이 저하되고 만다.
완벽한 사람도 완전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면서도 내 자녀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상대를 위한 노력으로 발현될 때 발전과 성장이 있었다. 처음의 글쓰기가 일기로 시작이 되었지만, 내 글을 읽어줄 사람들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읽히는 글이 되어야 했고, 과감하게 관점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성찰할수록 좋은 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가 목표가 아니라, 나를 더 잘 알고 상대의 마음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이자 목적이 되었다. 그러니 사유하기를 게을리하지 말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깊이 생각하고 표현해 보기를.
작가님들께 ⸜❤︎⸝
미열이 있던 셋째가 오늘 오후 갑자기 39도 이상의 열이 났습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소아과에 다녀왔습니다. 열이 나는 원인을 찾다 아이 귀를 보니 중이염이 심하게 와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귀 아프다고 얘기 안 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전날 밤 아이가 귀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중이염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날이 더워 아이가 힘들어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월요일이 연재일이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도 싶었지만 집에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차마 보낼 수 없었습니다. 주말 동안 감기증상으로 힘들어했기 때문에 아이를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글은 전 주에 써두었기에 아이가 잠을 잘 때 올리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열이 있어 몸이 뜨근한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였지만 오후가 되니 다시 열이 올랐습니다.
낮잠을 자던 아이는 깊이 잠에 들지 못하고 갑자기 몸을 떨었습니다. 몸이 더 뜨거워졌습니다. 급히 체온을 재보니 39도가 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가까운 소아과로 달려갔습니다. 고열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해열진통제가 들어간 수액을 맞기로 했습니다. 바늘이 들어가는데도 울지 않던 아이는 맞는 도중 흐느끼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픈 것을 빨리 알아채지 못한 제가 미웠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우는 아이를 토닥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사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바로 달려올 수 있는 병원이 있어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아이가 울긴 했지만 씩씩하게 잘 견뎌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수액을 다 맞고 1층에 있는 약국에서 약과 함께 시나모롤 초콜릿을 사주었습니다. 다 맞고 엄마에게 초콜릿을 사달라고 하라는 아빠의 말을 기억한 아이는 약국에 가자마자 초콜릿을 골랐습니다.
약국을 나와 아무렇지 않게 울음을 뚝 그치고 맛있게 초콜릿을 먹는 아이가 그저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씩씩하게 잘 견뎌주어서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비록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픈 것을 알고 놀라기는 했지만, 많은 것에 감사한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작가님들은 오늘 무엇에 감사한 하루였나요?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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