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서 나는 씁니다

"어머니는 뭐 좋아하세요?"

셋째의 하원을 위해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데 원장선생님이 다가와 물으신다. "어머니는 뭐 좋아하시나 궁금해서요. 태현이 어머니는 도마뱀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셨거든요." 재능기부처럼 엄마들이 각자 가진 재능이나 취미 등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거나 알려주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 나에게도 물어보신 것이었다. "책 보는 거 좋아해요." 글을 쓴다고 말하려다가 살짝 주춤하며 말했다. 아직 한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알려줄 수도 없고, 애매한 느낌이었다.


원장님의 질문은 시간이 지나도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면서 문득 다른 엄마들이 궁금해졌다. 엄마들이 책을 읽든 공부를 하든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지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일을 왜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지식을 얻고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배우는데, 가정 안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이나 사회성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신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전인적 발달에 엄마가 주는 영향이 크고, 엄마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을 듯했다. 엄마는 가정의 CEO라는 말이 있듯이, 전반적으로 엄마의 태도가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집을 등하원 하다 보면 많은 엄마들을 마주치는데 대체로 고갯짓을 하며 인사를 나눈다. 서로가 낯설고 불편한 것인지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돌아가기도 한다. 나 또한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내향적인 성향으로 사람들을 피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사회성이 아이들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가는 동안 엄마들이 밝게 웃으며 주고받는 인사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


인사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학습이나 생활습관 등 생활의 전체적인 부분이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이 가므로 엄마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듯하다. 엄마 자신이 노력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과정 속에서의 노력과 실천에 대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서 엄마가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엄마 자신을 위해서라는 이유가 엄마들에게 얼마나 어떻게 와닿을까?


살림이나 청소만 하기에도 버겁고, 하루의 시간을 다 써버릴 수 있는데, 어떤 동기로 무엇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에서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만의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인생에 끝이 있다는 사실로 보았을 때 지금 우리는 살아있기에, 살아서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게 된다.


왜,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하는 이유는 변화를 바라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 누워있으면 몸이 찌뿌둥해지는 것처럼 똑같은 생활은 마음 또한 찌뿌둥하게 했다. 주부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면서도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엄마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머뭇거려졌다. 서로를 멀찍이서 바라볼 뿐 다가가기보다 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때로 글을 쓰는 것이 밑바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스스로의 강한 의지가 없이는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문인도 아니기에 주목을 받기가 어려운 현실인 듯했다. 어려서부터 다독을 해왔던 것도 아니었고, 문학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한 사람이자 주부로 일상을 이야기할 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읽어줄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써나갈 끈기와 용기가 필요했다. 일상의 경험과 깨달음은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매일 꾸준히 쉬지 않고 써나가야 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해야만 하는 이유는 다 다를 것이다. 어쩌면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글들이 있기에 써나갈 용기가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좋아하냐,라는 원장님의 질문에서 시작된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물음은 스스로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베란다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던 내가 떠올랐다. 빨래를 널면서 마주하는 따뜻하고도 뜨거운 햇살이 참 좋았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밖을 한참 내다보며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지만 궁금함은 해결되지 않았다.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 그 뒤로 뭐가 있을까 알고 싶어 졌다. 그러다 시선을 바깥이 아닌 나에게로 돌리었다. 나를 말하자,라는 울림이 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진짜 내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사람이라면 비슷한 생의 흐름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상대와 나는 결국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연결고리는 진실된 마음이다. 진실로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질문이 필수인 것처럼 말이다. 나에 대한 궁금함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계속해서 새로운 글을 탄생시킨다. 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에 대한 궁금함과 서로의 연결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님들께 ⸜❤︎⸝‍


아주 오랜만에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셋째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함께 처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소통의 즐거움을 느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열린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며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우리였지만, 서로를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용기 내어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아이를 위해 만나는 사이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인연을 맺어가자고 말했습니다. 엄마들은 서로 이름으로 저장해도 되냐고 쑥스러운 듯 물으면서도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 한 해 한 해 쌓이면서 기쁨과 행복을 얻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내 이름을 잊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름을 찾게 해주고 싶어 서로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어색해하면서도 신선하다는 듯한 반응이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본 '나'자신이길 바랐습니다.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내 이름을 꺼내어 바라보며 희망을 느끼고 꿈을 떠올려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습니다. 때로 잊고 지냈던 나의 이름을 불러보는 기회가 되었을 겁니다.


작가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