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 맞은 다음날 아침, 식사 도중 엄마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엄마는 아빠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서 엄마 손으로 보내줄 거야. 엄마는 너희들이 감당할 수 없다면 요양원에 보내"
엄마 나이 65세, 벌써부터 가실날을 생각하시는 듯 마음 철렁 내려앉는 말을 하신다. 인생은 60부터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텐데, 아직 젊다면 젊은 엄마가 마치 앞을 내다보듯 말씀하시니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것처럼 때에 어울리지 않는 말인 것 같았다. 그 뒷말은 더 와닿지 않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
자격증을 취득하면 자신의 부모를 돌보면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은, 나이가 들었을 때 엄마를 돌봐달라는 뜻인 걸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으셨지만 그렇게 들렸다. 갑작스럽게 들린 그 말이 엄마에겐 늘 생각해 왔던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나이가 드셨고, 나 또한 나이 드신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라는 말은 그동안 수도 없이 들었는데, 엄마가 나이 들어 거동이 힘들어졌을 때 요양원에 보내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엄마에게도 그런 날이 멀지 않다고 느껴지신 걸까, 20년 후 혹은 30년 후의 일이라 생각했던 나는 엄마가 삶을 더 즐기지 못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안타깝고 답답했다. 문화센터에서 무용을 배우고 있는데 너무 재밌더라, 가요교실에서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불렀더니 너무 좋더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아직 창창하다고 생각되는 엄마에게서 삶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말속에 숨은 엄마의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그 말을 하신 이유는 뭘까? 미래가 불안하신 걸까? 주변에서 나이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몸이 아프고, 일할 수 없는 상황을 보게 되면서 엄마 자신에게도 곧 닥쳐올 거라는 생각이 드신 걸까? 그 마음을 헤아리기엔 엄마를 다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나의 계획에는 맞지 않는 거라고 거부해 왔지만, 이번만큼은 그 자격증 속에 엄마의 숨은 욕구가 있을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녀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경제적인 이득이 따른다면 부담 없이 자신을 돌봐줄 거라는 믿음이 있으신 걸까? 엄마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해주셨더라면 어땠을까?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엄마가 더 나이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게 됐어. 너희들과 남은 여생을 함께 하고 싶은데 엄마의 움직임이 불편해진다면 너희도 엄마를 돌보기 힘들어질 거야. 그런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부모를 돌보더라도 국가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니까, 너희들에게도 괜찮지 않을까?' 엄마의 마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엄마 걱정하지 마, 언니랑 내가 돌봐 드릴 테니까 안심해.' 나의 마음이 말한다.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 준 엄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엄마의 깊은 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나날이었다. 내가 힘든 건 모두 엄마 탓이야,라고 소리 없는 원망을 내뱉었던 나는 이제야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 목숨 걸고 나를 낳으신 엄마라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였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서야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그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왔다.
아이를 낳고서도 엄마의 마음을 바로 알지는 못했다. 계속해서 부모에게 의지하고만 싶었다. 남편과 문제가 생길수록 부모의 품에서 위로받으려 했다. 결혼생활 10년이 넘어서 이제야 부모로부터 마음의 독립에 대한 결심이 서게 됐다. 결심을 하고 그 마음이 유지되는 동안에도 부모에 대한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언니와 나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의심했다.
언니의 승진을 기다리며 입이 쓰고 몸이 아팠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니, 내가 책을 냈을 때와 반응이 다른 것 같아 서운함이 밀려왔다. 출간 후 시간이 지나고 도서관에 책을 신청해 주고 이모들에게도 소식을 전하기도 하셨지만 그때의 내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보여 언니의 승진을 마음껏 축하할 수 없었다.
하루 이틀 언니의 승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했다. 가족 단톡방에 팡파르를 울리며 이모티콘으로 축하를 대신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의심의 마음을 덮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언니를 축하해 주는 것이 부모님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무엇이라도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승진 축하 선물, 이란 키워드로 열심히 검색하여 축하 메시지를 각인할 수 있는 장미 모양의 조명을 찾았다.
승진하여 금의환향하는 언니를 반기는 엄마를 상상하니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가득 찼었지만, 이 또한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부정적인 마음을 내려놓아야 마음이 편안할 듯했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 작가'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언니에게는 이박사로, 나에게는 이작가로 부르셨다.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엄마가 우리를 불렀던 호칭이 현실화된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언니는 진짜 박사가 되었고, 나는 준 작가가 되었다. 엄마입장에서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로 보았을 때 그렇게 보일 듯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 테니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의 날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동안 엄마가 내게 해주었던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엄마가 요양원 이야기를 꺼내신 이유는 자식들을 이만큼 키웠으니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다, 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서운했던 적이 있었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엄마가 보여주었을 사랑의 표현이, 그것이 나에게 사랑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되돌아보면 사랑이었는데.
"양 옆에 딸들 끼고 참 좋다"
언니의 승진 축하를 위해 모인 날, 엄마는 기분이 좋았던지 거리에서 언니와 나를 양 팔로 깜 싸며 말했다. 어색했지만 그 순간의 장면을 기억하려 했다. 엄마가 한 말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님들께 ⸜❤︎⸝
셋째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가는 길, 카페에 들러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샀습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업어준다고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아이는 티니핑 음료를 사달라고 합니다. 울지 않고 어린이집에 보낼 요량으로 음료를 사주었습니다. 어깨에는 어린이집 가방과 낮잠이불이 든 가방을 메고 손으로 커피가 든 봉지를 들었습니다. 나머지 한 손으로 작고 귀여운 셋째의 손을 잡고요.
문득 이 커피를 선생님께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 좋게 하루 시작하시라고 드리려고 하는데 원장선생님이 나와서 엄마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커피는 하나인데,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 아이의 가방만 전달해드리고 말았습니다.
뒤돌아서며 아차! 그래도 선생님께 드릴걸, 원장님께는 다음에 사다 드린다고 선생님께 드리려고 하나밖에 안 사 왔다고, 그렇게 말하면 될걸, 후회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일 만나기로 약속한 어린이집 엄마들에게 선생님들께 드릴 음료와 간식을 함께 사서 드리자고 제안해 보자, 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요즘 같은 반 아이들이 대체로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 아이도 가기 싫어한다고 말하니, 각자의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개선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보낼지 막막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잘 못 이야기를 꺼내 문제를 일으키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제 손에 든 커피를 보며 답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의 체면을 세워주자!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해지고, 그래서 저절로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불만이 생기는 데에는 감사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작가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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