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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앞에 바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

남편을 사랑하는 법

아침 6시. 자동적으로 몸이 일어나 진다. 토요일임에도 아침 일찍 눈을 떠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에서 양념된 불고기용 소고기와 당근, 버섯 등 채소를 꺼내 싱크대 위에 올린다. 전날 썰어 소금을 살짝 뿌려 재워 둔 호박을 꺼내 계란을 풀고 튀김가루와 부침가루를 섞는다. 밀가루를 묻힌 호박을 풀어둔 계란물에 넣어 버무린 후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린다. 치익 소리가 나며 고소한 계란 냄새가 풍긴다.


따근한 밥이 완성되어 불고기와 잡채를 데워 상에 올리는데 남편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부엌으로 다가온다.


"여보 밥 먹어야죠."

"회사 갔다 와야 된다니까"

"그래도 생일 상인데 밥 한 술 떠요. 얘들아 얼른 아빠 옆으로 와. 같이 사진 찍게."

"회사 가야 하는데, 일찍 일어나 준비하지."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요리한 건데. 얘들아 얼른 일로 와."

"밥 한 숟갈 먹으라는 거야, 사진 찍으라는 거야. 그리고 애들 자다 일어났는데 애들한테 왜 그래. 저녁때 하면 되잖아."

"... 알았어. 밥 한 숟갈만 떠요."


남편은 화를 내면서도 차려놓은 밥을 먹지 못해 미안했는지 정말 밥 한 숟갈을 미역국에 넣어 먹은 후 가방을 들고나간다.


"얘들아, 왜 아빠 옆으로 안 온 거야? 아침 일찍 일어나 아빠 생일 준비한다고 전날 일찍 잤잖아. 왜 아무도 엄마 안 도와주는 거야? 눈치 챙기고 하면 좋잖아! 잠깐만 하면 되는데!"


아이들에게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생일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재촉한 걸까? 실컷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생일상 앞에 앉은 남편을 찍은 사진을 보는데, 웃음이 나왔다. 퉁명스러워 보이는 남편 뒤로 첫째 아이가 브이자를 하고 서있는 것이었다.


"엄마가 오라 그래서 왔잖아!"

"못 봤어. 아빠만 보인 걸 어떡해"


화만 내고 나간 남편이 미우면서도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밥 먹든가 말든가 알아서 먹으라고 큰소리를 내었지만 그렇다고 아침도 챙겨주지 않는 못된 엄마가 되기 싫어 아이들에게 미역국을 떠주었다. 볶아 놓은 불고기는 뚜껑을 덮어 전기레인지 위에 올려두고 미역국만 떠주었다. 화만 잔뜩 내고 기분은 다운되었지만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었다. 남편이 오전 중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을 돌아보았다. 남편 생일을 아침에 짜잔 하고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에 바삐 움직여 음식을 차려 놓았건만, 남편은 화만 내고 나가버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좀 있다 갈 거니까 전화하면 내려와"


화를 내고 나갔던 남편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려온다. 화가 나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자기 생일이라고 일찍 일어나 생일상을 차린 것에 미안했던 것인지, 생각과는 달리 남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남편의 마음도 모르고 아침밥 먹으라고 사진 찍자고 한 내가 바보 같았다. 저녁때 고기를 사 가지고 시댁에 갈 거라는 생각에 아침에 생일상을 준비한 건데, 가지 않을 걸 알면 서두르지 않았을 텐데. 바보 같은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화가 나는 마음이 커지지 않고 금방 가라앉았다. 남편의 차분함 때문이었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점심 겸 저녁메뉴를 고민했다.


"애들 배고픈데 밥 먹고 갈까? 뭐 먹고 싶어?"

"집에 가서 먹으면 돼지."

"그래? 그럼 치킨 시켜 먹을까?"

"치킨? 너희들 뭐 먹고 싶어?"

"당신 생일인데 여보가 정해. 중국집? 아니면 파스타 집?"

"초밥 뷔페 어때?"

"거기도 좋겠다."


다섯 식구가 뷔페에서 먹으면 십만 원이 넘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남편의 생일인 만큼 기분을 내고 싶었다. 메뉴를 정하는 남편의 말이 반가웠다. 생각만 하고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정했다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 다녀왔다. 남편의 입맛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맛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생일에 함께 외식을 하며 가족만의 단란함을 느낄 수 있어 충분히 좋았고, 행복했다. 아이들은 키즈 존에 있는 놀이방에서 실컷 놀고,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이 집안일에 대해 잔소리하거나 타박하는 듯한 느낌일 때 속상하면서도 남편과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게 될 때는 그리도 다정한가 싶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안심이 된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서로가 서로에게 안심을 느끼고 있는 지금이 감사할 따름이다. 남편과 나 사이에 안정감이 감도는 요즘이다. 왜 그렇게 된 걸까?


언제부터인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고, 크든 작든 어떤 일이든 의논하고 상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에서부터 엄마들과 함께 모임을 가진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남편은 내가 말하는 것에 대부분 동의해 주었고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남편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긍정적으로 받아주었다. 대화와 소통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남편과 나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더 이상 우리가 갈라지려고 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우리의 관계가 단단해짐을 느낀다. 비로소 안정기에 든 우리의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도록 남편을 더 사랑할 것이다. 내 의견을 굽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고 남편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니 남편도 나에게 맞춰주며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때로 지면 어떠리. 사랑하는데 뭐가 문제가 될까. 나는 오늘도 사랑 앞에 바보가 된다.



작가님들께 ⸜❤︎⸝‍


저는 선풍기 바람을 쐬며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여기가 무릉도원이지 싶습니다. 저는 요즘 셋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새로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설레는 것 같습니다.


침묵과 기다림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시끌 시끌 이야기 나누면서도 중간중간 생기는 공간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관계의 미학이라 생각하며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각자 가진 고민과 생각들을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한 일상 속에서 글로 만나 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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