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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비로소 알게 된 것

이른 아침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감자 먹니?"

"네. 왜요?

"감자 한 박스 들어와서 나눠주려고 그러지. 엄마가 점심때쯤 가지고 갈 거야."

감자,라는 말만 듣고도 시골에서 또 잔뜩 보내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의 전화를 넘겨받은 엄마는 점심때쯤 감자를 가지고 갈 테니 역에서 만나자고 하신다. 오랜만에 엄마와 마주 앉아 점심을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도착할 때쯤 집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부모님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이기에 엄마가 오는데 부담이 덜 할 것 같았지만 감자를 무겁게 들고 오실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창을 바라보는데 버스가 금세 역에 다다랐다. 저 멀리 묵직해 보이는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오는 엄마가 보인다. 반가우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다른 가족들 없이 엄마와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낼 생각에 어색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어떤 소재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었다.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아하실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공백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버스 창으로 역을 빠져나오는 엄마를 보며 그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오갔다.


양손 무겁게 감자를 들고 온 엄마를 보며 얼른 장바구니를 넘겨받은 후 근처 식당으로 갔다.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며 식당문을 밀었다. 의자에 앉아 메뉴를 고른 후 선결제를 위해 "내가 낼까?"라고 말하며 일어서는데 엄마가 카드를 내밀며 "이걸로 결제해"라고 말했다. 잠시 머뭇대다 엄마가 주는 카드를 받았다. 엄마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데 언제나 먼저 카드를 꺼내시니 다 큰 자녀가 부모에게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가격이 얼마나 한다고, 또 엄마에게 얻어먹니, 마음이 내게 혼을 내는 것만 같다. 그런 내가 철없이 느껴진다. 나는 엄마가 주는 카드를 조심히 받아 계산했다. 언제 엄마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해 드릴 수 있을까. 온전히 내 힘으로 말이다. 아주 가끔 남편이 부모님과 외식할 때 돈을 내기도 하지만, 직접 내가 엄마에게 밥을 사는 일이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검소한 편이신 부모님이기에 밥을 사주실 때마다 마음 한편이 편치만은 않다. 그동안 해드린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기에 자녀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엄마와 마주 보며 뜨거운 칼국수를 호호 불어 먹었다. 더운 날씨임에도 뜨거운 국물이 훌훌 들어가는 걸 보니 엄마 딸이 맞긴 맞나 보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뜨거운 국물을 좋아하셨다. 그런 엄마를 닮아서인지 나도 뜨거운 국물을 참 좋아한다. 입맛도 닮은 우리는 천상 모녀인 걸까, 어느 순간부터 엄마를 닮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요즘엔 글 쓰는 나를 응원해 주고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여주시니, 잘해드리지 못해도 엄마는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엄마는 식사를 마치고 그냥 가기엔 아쉬우셨는지 "커피 마실래?"라고 하신다. 평소 커피를 즐기시지 않는 엄마이기에 나 때문에 괜히 가시는 것 같아 내심 미안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커피 외에도 음료나 차가 있어 안심이 되었다. 엄마는 따뜻한 허브티를 고르셨다. 테이블 의자에 앉자마자 엄마는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셨다. 언니는 회사를 다니고 너는 책을 냈는데, 엄마 자신은 결혼 후 살림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 후회가 된다고 하셨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엄마도 뭐든 해보라고 말했지만 무엇을 하기까지 여러 걱정을 하는 엄마라는 것을 알기에 안타까웠다.


엄마는 나에게 구체적인 하나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것을 하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그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잘 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시간이 걸려도 당장의 수입은 없어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것 같다. 무엇이든 다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자녀가 속을 섞이고 불평불만을 내뱉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맞아주신다. 자녀가 하려는 것에 우려하면서도 응원해 주는 엄마를 보면서 결국 부모는 자녀를 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야 부모님의 사랑을 알 것 같다.


엄마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의 진심이 느껴져 고마웠다. 엄마는 "다 잘 될 거야. 다 이루어질지니" 하며 내게 힘을 주셨다. 두 손으로 나에게 기운을 심어주셨다. 둘째로 태어나 언니와 나를 비교하며 소외감을 느꼈었는데, 엄마의 진심 어린 응원으로 온전히 그 사랑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았다.


가끔 둘째 아이는 "엄마 나 안 좋아하지?"라고 말하곤 한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걸까?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열 달 동안 배에 너를 품고 배 아파서 너를 낳았는데, 어찌 널 안 좋아해. 그 무엇보다 소중한 너인데. 사실 엄마는 널 가장 좋아해"


그 마음이 나의 엄마에게서 전해졌다. '나는 너를 배속에 품었을 때부터 사랑했어. 그리고 너를 갖기 전부터 널 기다려왔단다. 엄마는 지금도 널 사랑하고 있어. 이제 엄마 마음 알겠니?' 엄마가 속으로 삼킨 그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에 나는 답한다. '엄마 사실은 나도 엄마 많이 사랑해요.'



글 제목을 생각해 보는데 '엄마의 사랑'만이 떠올랐다. 식상하게 느껴질 것 같아 글을 올릴 때까지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제목만이 이 글을 설명하는 데 적합할 듯했다. 우리의 일상이 특별한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도 그렇다. 부모 자녀 관계만큼 사람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는데 부모님을 빼놓을 수 없기에 그 관계가 소중하고 중요하게 다가온다. (발행 후 다시 제목을 바꾸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를 증명하기 위함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울림이 온다. 바람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치일 때 글쓰기를 만났고, 내 글의 중심에는 늘 가족이 있었다. 힘든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가족에게서 찾으며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했었지만, 반대로 가족의 사랑을 글을 쓰며 알아갈 수 있었다. 나의 글에서 가족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를 일상의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망의 마음이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 기적임을 깨달았다. 상대를 사랑하고 위하며 살아갈 때 마음에 평안이 깃들었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인생의 길에서 막막하게 느껴지고 글쓰기마저 막막할 때 내 뒤를 돌아보니 가족이 있음을 알게 됐다. 나를 끝까지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바로 내 옆에 있지 않아도 든든함을 느낀다. 그 힘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연 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응원하면서 하루를 아깝지 않게 살아내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나의 글 또한 어딘가에 닿아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믿는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작가님들께 ⸜❤︎⸝‍


글을 써놓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봅니다. 글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퇴고를 해야겠다, 두 번째는 '이게 내 모습이다'라는 것입니다. 나와 직면하는 순간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음에 갈등이 일어날 때 직면하기보다 회피하는 유형의 사람이었습니다. 완전히 극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면서부터 내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인정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혹은 이건 또 괜찮은 모습이네라고 스스로를 칭찬합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첫 번째가 흐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 수 없고, 고칠 수 없다는 것을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가장 좋은 듯합니다. 관계에서든 자신의 과업에서든 모든 것이 물 흐르듯 할 때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간을 두고 제 자신을 바라봅니다. 하나의 사건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에 불편함이 생길 때 상대가 아닌 제 자신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에서 배웠듯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저의 욕구와 감정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욕구와 감정이 무엇일지 추측해 보면서 이해해 갑니다. 나 자신과 상대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 또한 이와 같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마음에 평안을 얻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혹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제 주변을 돌아보고 감사함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작가님들은 어떠신가요?

오늘도 사랑 나누는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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