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달팽이 Jun 15. 2023

나는 아직 자라고 있는 중입니다

혼자여서 성장할 수 있었던 날들

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고 그 공간을 인정받고 싶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나조차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였을까. 집이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없었고 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가 아니었던 그 집은 언제든 나를 감시했다. 친구랑 전화통화를 하고 있으면 엄마가 방문을 열고 그만 통화하라며 은근히 나를 압박했다. TV를 보고 있으면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줄이라 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편했다. 부모님이 언니와 외출을 하거나 지방으로 가시면 집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부모님을 따라나서지 않았던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녹화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며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비디오테이프로 방송을 녹화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던 그 시절의 유일한 낙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떠돌던 나를 붙잡아주던 유일한 친구였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나오면 음반 가게에 가서 CD를 샀고 가방 속에 CD플레이어와 함께 늘 지니고 다녔다.


지금도 음악이 나의 유일한 베스트 프랜드이고 분신이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내 가방 속엔 CD플레이어 대신 무선이어폰이 들어가 있다. 노래를 듣지 않아도 늘 지니고 다닌다. 마치 부적처럼 말이다. 늘 가방에 가지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 언제 어디서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지나가는 그곳이 나의 거리가 되었고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던 그땐 엄마가 너무 미웠다. 그때마다 나는 방문을 걸어잠겄고 온전히 혼자가 되어 울음을 삼켰다. 울고 또 울어도 그 미움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자라고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의 마음은 자라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어린아이를 떠나보내려고 하니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떠안게 되었다. 한 달만 참으면 조금은 따뜻한 봄인 3월에 태어나 엄마를 덜 힘들게 했을 텐데... 나는 엄마가 임신한 지 9개월이 되었을 때 세상에 나왔고 엄마는 또다시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나를 낳았다.


10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9개월에 태어난 것도 엄마를 힘들게 했을 텐데 우는 것 또한 평범치가 않아 엄마는 늘 애를 먹어야 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큰소리로 울었던 기억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복도식 아파트 맨 앞 집에 살았던 때 복도 맨 끝집에 사시던 아주머니가 나의 울음소리에 놀라 무슨 일이 난 건지 찾아올 정도였다.


커가면서도 알 수 없는 억울함들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부모님에게 나의 의견이나 생각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에게 등을 돌리시면서 외면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더 큰소리로 말해야 했고 울어야만 했다. 어른이 되고 아이 엄마가 되어서도 나는 큰소리로 말해야 했고 울어야 했다.


그렇게 울부짖던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의 티를 벗기 위해 자신을 탓해야만 했다.




셋째 아이를 낳은 지 5개월쯤,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씀으로써 비로소 나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이라 정해져 있지 않아도 글을 쓸 수만 있으면 그 공간은 나만의 것이 되었다. 글쓰기는 나를 몰입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온전히 마음을 터놓고 추스르는 법을 알려주었다.


글을 쓰면 우울했던 마음이 가라앉아 안정이 되었다. 부족하게 느껴지던 나 자신도 자신감을 얻었고 글 쓰는 엄마가 되어 당당히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아이들도 글 쓰는 엄마를 좋아해 주었고 자신들도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고 했다.


큰아이는 늘 내 글에 관심을 가졌고 엄마의 글이 최고라며 치켜세워주었다. 아이 또한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동화를 만들기도 했고 일기를 쓰기도 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조금씩 단단해진 내면은 죄책감을 벗게 해 주었다. 엄마의 힘듦과 아픔이 내 탓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엄마의 상처는 엄마 것이고 엄마가 해결해야 할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를 탓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엄마를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라온 건 사실이지만, 내 삶의 결과를 엄마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나는 온전히 나로서 살아내면 되었다.




참고 또 참아보았던 아픔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이젠 말할 수 있다. 슬프고 힘들었던, 어린아이였던 나의 마음은 조금씩 자라고 있다고.


이젠 자라야지, 이젠 어른이 돼야지, 하고 나를 재촉했던 나의 마음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뒤돌아 울고 있던 어린아이를 토닥이면서 "내가 너를 믿고 있잖아. 너의 마음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내게 기대도 돼."라고 말했다.


어떤 위로의 말도 나의 어린아이를 위로할 수 없었다. 기다려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다. "걱정하지 마. 너의 내일은 빛날 거야. 그런데 오해하지는 마. 지나간 과거가 우중충 했다는 것이 아니야. 네가 부족하다거나 못났다는 것도 아니야. 너는 너 자신을 믿고 있었잖아."


나를 슬프고 아프게 했던 모든 것들은 나를 성장시켰고, 말로 다 풀어낼 수 없었던 감정들은 이곳에 남아 나를 위로했다. 이젠 더 이상 울지 않기로 약속했다. 왜 사람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도 외로운 걸까. 같이 있어 행복하다 느꼈던 순간에도 나는 나를 찾고 싶었고 혼자 있음에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글자 하나하나가 나의 마음을 울렸고 나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던 나의 목소리는 글자로 문장으로 문단으로 하나의 글로 완성되었다. 나는 글로 나의 마음을 옮겨 적었고 그 긴 글들은 '나'가 되었다. 나를 설명할 수 없었던 홀로 삼켜왔던 그 말들은 하나의 글이 되어 '나'가 되었다.


'나'가 된 그 글들은 또 다른 '나'가 되어 나를 바라봐 주었다. 슬픔과 아픔은 기쁨과 뿌듯함이 되어 돌아왔다. 온전히 쏟아부었던 나의 마음은 글이 되어 세상으로 날아갔다.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라 소중해. 소중한 너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도 너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의 눈을 따스히 바라보고 가만히 너를 안아주는 거야. 나는 너의 옆에서 가만히 있어줄게. 그게 유일한 나의 위로야."


글은 또 다른 나가 되어 나를 위로했고 성장시켰다.





마음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너 자신을 믿고 있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