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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Jun 24. 2023

살려고 쓰는 글쓰기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욕구를 숨기고 사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원하는 것을 말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아이를 두고 나가는 일 또한 부탁하기가 힘들어졌다. 자꾸만 나를 숨기게 되고 표현하지 않으려 애를 쓰게 됐다.


어느 날엔가 남편과 다툼이 일어났고,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이고 아내지만 자꾸만 나, 000가 틔어 나오는데 어떡해? 나는 000으로 살면 안 돼?" 

(000는 내 이름이다.)

 

욕구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었고, 가족 안에서 존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험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자꾸만 누워 있고 싶었고 누워있으면 눈물이 났다. 아이가 곁에 있으니 잠깐 누워있다가도 다시 일어났다.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 있는 느낌이었다. 보통 같으면 어떻게든 아이를 데리고 나가 바람이라도 쐴 텐데 전혀 그런 마음이 일지 않았다.


어떻게든 견뎌내 보려 집안일을 했다. 빨래를 돌리고 널고 아이에게 줄 밥을 하고...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건가 싶었다. 어딘가에 맘을 터놓을 곳이 없어 마음이 답답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친정가족과 멀어져야 함을 알기에 연락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마음이 힘드니 밥도 생각나지 않았다. 혼자라면 누워있거나 굶어도 상관없었을 텐데 아이를 위해서 힘을 내야 했다. 부부가 마음을 맞춰 육아와 살림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남편의 눈에 내가 늘 수고로워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같이 나눠서 하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주장할 수만은 없었다. 


막막하고 답답한 기분을 풀 수 있는 것은 글쓰기 밖에 없었다. 실질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생산적이고 유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해보자, 어떻게든 일어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아이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 부모를 찾는다. 부모 앞에서 힘든 것도 말할 수 있고, 잘한 일도 이야기하면서 격려와 칭찬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를 존중하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기댈 곳이 없어 좌절하거나 자기를 없앨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보다 부모의 의견에 따르는 일이 많아질 것이고, 부모를 멀리하려 할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정 안에 있어야 하고 부모의 말에 무조건 수긍을 하면서 더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자신을 숨기고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게 된다. 제대로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은 결핍을 낳고 사회생활이나 결혼생활을 앞에 놓인 많은 장애물들을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인정과 사랑에 대한 결핍은 마음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 쉽게 마음이 나약해진다. 마음속 자라지 못한 아이는 스스로 살아나가려 애쓰기보다는 어딘가에 마음을 의지하려 한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아 생긴 마음의 구멍을 메꾸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누구든 마음을 다 주려 할 것이다. 


낮아진 자존감은 삶의 근간을 흔들어 버린다. 나라는 한 사람이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것 같아 좌절을 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르고야 마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채워지지 못한 마음의 빈곤은 사람을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기보다 포기하려 하고 도망가려 한다. 


나 또한 도망가고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도 메꿔지지 않은 마음의 구멍들은 계속해서 사랑과 인정을 갈구했고 나를 탓하는 말들은 돌에 맞은 듯 아프게 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생각될 때 마음이 우울해졌고 답답해졌다.


욕구와 감정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의욕이 사라져 갔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존중과 인정에 대한 결핍을 원망만 하며 있을 수는 없었다. 나 스스로 작게라도 성공경험을 쌓아나가야 했다. 결국은 글쓰기뿐이었다. 당장 글쓰기로 어떤 결과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내가 가진 능력이 부족하다고 나를 탓하고,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가족들을 탓하며 불평불만 하기엔 인생이 아까웠다. 


나는 글을 쓰면서 어떻게든 살아내 보자고 결심했다.




글을 쓰면서 글쓰기가 삶의 목표가 되었고, 살아가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씀으로써 하루를 버텼고 씀으로써 살아가는 의미를 되새겼다.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서 글을 쓰기보다 글쓰기로 삶의 의미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들을 써보자 다짐했다.


글쓰기가 직업인처럼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으면 했다.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명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단순히 누구 엄마 누구 아내, 혹은 주부로서가 아닌 글을 쓰는 사람으로 땅땅땅 선언을 하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직함을 주니 아이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었다. 


처음엔 글이 좋아 글을 쓰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나는 글쓰기로 당당한 '나'가 되길 바랐던 것이다. 어떤 역할이 아닌 나 000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잘하는 것이 되어 세상에 나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고, 무너지려 하는 나를 지킬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고, 더 나아가 복잡한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늘 의문이었던 삶의 굴곡의 원인들이 조금씩 퍼즐을 맞추듯 찾아나가게 되었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나다워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조금 더 세상을 넓게 바라보게 되었다.




셋째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아낌없는 사랑과 인정이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온전히 사랑해주자 마음먹었다. 꼼지락 거리며 누워만 있던 아이가 커서 무엇이든 독립적으로 해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를 독립적이고 자신감 있게 성장시킬 수 있는 건 부모의 '사랑과 인정'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려고 하면서도 엄마 곁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충분한 사랑과 인정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셋째 아이 덕분에 첫째 둘째 아이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고 부모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정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은 부모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자꾸만 보이는 편애된 사랑과 이기적인 모습은 부모가 되어서도 상처로 돌아왔고 여전히 내 마음에 사랑받고 싶은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음식과 물질적인 것만이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몸은 성장할지 언정 마음은 아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자꾸만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고, 온전한 나만을 위한 사랑을 확인받지 못하면 실망과 미움만이 남을 뿐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부모에게 글을 쓰는 나의 모습을 인정받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결과로 돌아오는 일이 아니다 보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하고 싶어 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


그저 참으면서 아이들 바라보며 살라는 말만 돌아왔다. 미움받지 않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얕게 굴라는 말뿐이었다. 한창 젊은 삼십 대인 나에게 고작 해주실 말이 이것뿐이란 생각에 실망을 했고 더 이상 부모에게 사랑과 인정을 기대하지 말자는 다짐만 되새겼다.


사람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불쌍하게 쳐다보면 그 사람에게 불쌍한 냄새가 난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은 마치 나를 불쌍한 냄새가 나는 아이 취급을 하셨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데 자꾸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현실에만 집중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려 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현실과 사랑받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듯 말씀하신다. 


부모님은 사람을 볼 때 욕구와 감정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능력이 있고 없는지로 사람을 판단하신다.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이나 지식 혹은 학위, 직장만이 한 사람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지금 당장 부족하면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면 되는 것이다. 사람에겐 희망이 있으니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데, 부모님에겐 그런 믿음과 희망이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으리라. 


사람에게는 성장을 바라는 욕구가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 와도 스스로의 힘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은, 좌절과 불평불만 등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주고 내가 일어날 수 없는 건 모두 상대 탓이라고 분노하게 된다. 


결국 사람을 바라보는 건강하고 올바른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도 함께 연결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다.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이다.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갖고 있고 엄청난 부를 누린다 해도 곁에 사람이 없다면 행복할 수 없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선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욕구가 좌절됨으로써 느꼈던 우울함은 나의 몸도 마음도 아프게 만들었다. 의욕도 없어지고 식욕도 줄어들려는 순간 내 앞에 있는 어린아이를 바라보게 됐다. 건강하고 예쁜 아이가 내 앞에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을 바라봐달라고 칭얼대면서 내 주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 덕분에 억지라도 몸을 일으켰고 분주히 움직였다. 아이를 챙기고 청소나 빨래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 부정적인 마음도 조금씩 옅어져 갔다.


부족한 실력이어도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통해 배움을 얻자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풍요로움은 결코 물질적인 것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삶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을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내면을 가꿔 나가다 보면 누군가에겐 나의 모습이 희망이 될 것이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내면을 가꾸어 나가는 삶이 행복을 볼러올 것이고 삶을 풍요롭게 할 거라 믿는다. 

 

살기 위해 쓰던 글쓰기는 그렇게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사랑과 인정은 사람을 살리게 한다. 오늘 내 옆에 누군가 희망을 느끼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다면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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