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읽고 싶었지만 미루기만 했던 ‘소로우의 일기(주1)’를 꺼내 조금씩 읽어 내려가고 있다. 소로우의 친구인 ‘에머슨(주2)’이 그에게 일기쓰기를 권했다고 한다.
아, 이럴 때 난 소름끼친다.
사실 얼마 전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내게 ‘글쓰기’를 권했는데 나 역시 이러저러한 핑계로 미루고만 있다가 ‘내가? 내가 글을?’ 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으로 서서히 데려가고 있던 참이었다. 읽어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꺼낸 소로우에게서 나는 격한 동류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찰나의 경험은 제 아무리 우연이라고 하지만 나를 ‘글 쓰는 사람’의 자리로 확 앉혀주기에 충분했다.
고백하건대
지금까지의 나는 어떤 일을 해나가는데도 ‘신중’으로 포장된 ‘생각’ 속에 빠져서, 어쩌면 나의 우유부단함과 나태를 보기 좋은 변명으로 삼아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작은 느린데 포기는 빨랐고 포기에 걸맞은 타당한 이유도 충분했다. 말 그대로 포기하는 나에게 적당한 이유들을 주렁주렁 달고 살았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하는 생각이 들면 그리 행동이 이어지고 ‘쓰기 싫은데, 어려울 텐데...’하면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나의 의지나 바람과는 달리 ‘글 쓰는 사람’과 나를 연결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내 속에서 쓰고 싶은 간절함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내용보다는 ‘와, 어떻게 이런 관점으로 글을 쓰지?’, ‘어떻게 자기 마음을 이렇게 콕! 꼬집어서 표현하지?’하며 마냥 어린아이처럼 부러워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글들을 흉내내어 써보고 싶지만 내겐 그런 필력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또 고백하건대,
나는 글은 아무나 쓰는 줄 알았다.
특별한 훈련과정없이 그냥 한글을 알기에 문장만 조금 연습하면 나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영을 시작할 때는 물에 대한 공포심을 이겨보고자 배우기 시작했고, 강사가 한참 뒤 내게 말하길 1달 나오다가 안 나오실 줄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강사가 볼 때도 나는 너무 겁이 많고, 시작의 열정에 비해 금방 포기해 버리는 그런 사람으로 비췄던 것이다. 지금은 안 배웠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물속에서의 호흡 조절이 자연스럽고 단계, 단계 올라서면서 성장하는 맛, 희열이 날 수영에 중독시켜가고 있다.
독서할 때도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소설책이나 쉬이 읽히는 책이 아니라 내 내면의 발돋움을 위한 책을 읽을 때는 한글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고 어떻게 이렇게 헤매?’ 이런 감정이 훅 올라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은 심정에 괴로웠다. 처음 배우는 것도 아닌 대한민국에 살면서 글에 대한 이해력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읽었고, 이해 안 되는 내용을 알아내려고 또박또박 읽기도, 필사도, 애매한 단어는 찾아가면서 계속 읽어 나갔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3개월쯤 되니 책속에서 내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조금씩 읽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처음부터 진입장벽을 쉽게 봤다. 그래서 지금 당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오만한 마음가짐이 뒤통수를 친 것이다.
그래서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 보면 정말 1시간에 몇 줄밖에 못 쓰는 초라한 내 현실 앞에서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웃펐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것에는 ‘도전’이란 표현이 필요없다.
이미 익숙한 것은 잘 해낼 수밖에 없으니까.
‘도전’했던 수영이나 독서처럼 계속해보는 거지!!
그래 그냥 하는 거지!!
알고 있어!!!
근데 잊고 있었다.
무념무상 그냥 하다 보면 된다는 것을..
일기를 쓸 때와는 마음부터가 달랐다. 일기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편한 마음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내야 한다는 것이 심하게 나를 압박했다. 정말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처음 정한 주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글이 흘러간다. 하지만 이제는 포기하기보다 다시 그 주제로 돌아와 묵묵히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양이 쌓이다 보면 발전적으로 나아짐을 알기에...
그저 써야 한다는 마음.
‘처음이잖아!! 괜찮아!!’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했으니.. 이제부터는 계속 써나가기만 하면 돼.’
지금까지 수만 가지 목표들을 세웠고 그것들을 다 이룬 것은 아니었다.
'포기한 것도 많았지만 또 이룬 것도 많았잖아! 맞아 그랬지!!'
얇은 귀에 비해 골통짓을 시작하면 또 고집스럽게 해내는 모습도 내게는 있다.
지금이 그 때다.
고집스럽게 골통짓을 해야 하는 시기다.
아! 이제 나는 정리되었다!
몽테뉴의 말대로
‘내 골통에 설사제(주3)’를 들이부은 이 시원한 느낌!
자, 지금부터
'나는 글쓰는 사람이다!'
(주1)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저서, 소로우의 일기
(주2)랄프 왈도 에머슨 ; 미국 사상가 겸 시인. 자연과의 접촉에서 고독과 희열을 발견하고 자연의 효용으로서 실리(實利)·미(美)·언어(言語)·훈련(訓練)의 4종을 제시했다. 정신을 물질보다도 중시하고 직관에 의하여 진리를 알고, 자아의 소리와 진리를 깨달으며, 논리적인 모순을 관대히 보는 신비적 이상주의였다. 주요 저서에는《자연론》,《대표적 위인론》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랠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주3)몽테뉴의 저서 '나는 무엇을 아는가'에서 그는 '그대의 골통을 훑어낼 설사제를 쓰라. 그대의 배속을 훑는데 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