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사소한 의무와 일들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더 차원 높은 일들에 몰두할 수 없다고 너나없이 불평하곤 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결심을 하고 그 모든 사소한 문제들로부터 벗어난다면 그들은 즉각 차원 높은 일들에 생을 바칠 수 있을 것이고,
나머지 마치 숨 쉬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시간이 없어서 어떤 일을 못한다고 말하진 않을 것입니다.
책임감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일을 제쳐두고 다른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주1)
아이야. 엄마는 소로우의 글귀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 거기에 엄마가 알아가고 지켜가고자 하는 덕목들이 포함되어 있었거든. 책의 글귀를 기준 삼아 살면 모호한 삶에서 좀 더 간단하고 명료한 삶을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책 공부를 시작하면서 엄마 마음에도 기준을 가지게 되었지. 그걸 네게도 공유하고 싶어 편지를 쓴단다.
첫째, 해야 할 것을 먼저 해야 해.
인생의 모든 부분에 걸쳐 완전한 공평이 균형을 조절한다. “신의 패쪽은 언제나 한쪽이 무겁게 마련이다.” 세상은 구구단이나 방정식과 같아서, 이것을 어떻게 바꾸어 놓든 스스로 균형이 잡힌다. 어떤 숫자를 우리가 끄집어내든 나타나는 값은 과부족이 없다. 어떠한 비밀도 드러나고 어떠한 죄악도 처벌되고, 어떠한 덕도 보상받고, 어떠한 과오도 시정된다.
말없이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확실히. 우리가 말하는 응보라는 것은 우주의 필연적 법칙이고, 그 법칙으로 부분이 나타나는 곳에는 반드시 전체가 나타난다. 연기가 보이는 곳엔 반드시 불이 있다. 손발이 보이면 그것이 붙어 있는 동체가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안다.(주2)
전체가 되기 위해서는 전면에 보이는 것이 있고 후면에 감춰진 것이 있어. 이런 양극의 원리에 의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먼저 해야 할 일을 해야 해. 그래야 다음에 네가 누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거지. 이런 원리에서 보면 중요도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거지.
엄마는 독서가 중요한 일인 줄은 알지만 할 필요성을 간절하게 못 느꼈어. 그래서 잠이 많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뒤로 밀쳐 버렸어. 분명 바쁜 이유는 온전히 엄마와 너희를 위한 시간이 아니었어. 엄마가 생각한 바쁘게 만드는 사소한 이유들이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오판하게 만들었지.
너도 알고 있지. 엄마가 작년 추석 며칠 전부터 새벽 독서를 시작한 일.
엄마가 제일 잘한 일 중에 하나야. 무슨 생각이었는지 엄마는 어떤 이끌림에 의해 그렇게 새벽 독서를 했지. 결혼하고 너희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엄마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을 한 순간이었어. 책을 읽기 전에는 너희를 키워내야 하는 시기였고, 엄마 외부 환경에 시선이 많이 가 있었어. 그 삶도 나쁘지 않았지만 엄마를 돌아보아야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길 것 같았거든. 지금 이 시기가 엄마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때인지도 몰라.
그렇게 엄마가 공부를 하면서 우리 집도 많이 바뀌었지. 혼돈의 카오스였지만 스스로 자리를 잘 찾아줘서 고마웠고, 그 덕에 엄마는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할 기회가 생겼어.
그래서 엄마는 중용 1장 1절을 기준으로 삼았어.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교지위교
우리는 하늘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어. 근데 그 본성이 길을 잃고 사는 거야. 본성을 찾기 위해 우리는 마땅히 공부를 해야 하는 거지. 그렇게 우리의 본성을 잘 길러내면 직관이 저절로 길러지면서 통찰력을 갖게 되는 거지.
둘째, 포기를 잘해야 해.
소로우는 위의 글에서 결심을 하라고 했지. 엄마도 매번 결심을 하는 날들이 많았지. 하지만 엄마는 작심삼일이었어.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결심은 그때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취해서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거였더라고, 어떤 일을 해내겠다는 것은 감정이 우선이 아니라 행동으로 쭉 연결이 되어야 해.
결심 말고 결단을 해야 하는 거지. 하고 싶은 것을 양손에 쥐고 결단은 할 수 없어. 같은 시간에 둘을 다 할 수 없는 거지. 안정된 삶의 질서란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의 포기를 포함한다는 것이야. 엄마가 새벽잠과 사람들의 만남을 포기하고 새벽독서를 선택한 것처럼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거야. 둘 다 하려고 한다면 분명 과부하가 오게 돼. 과부하가 계속 반복되면 번아웃이 오게 되는 거지. 그건 둘 다 가지려는 탐욕스러운 욕심에서 생겨나는 거야. 처음은 별로 힘들지 않게 두 가지를 병행하더라도 계속되면 번아웃이 오게 되는 거지.
결단을 내렸으면 그 한 가지에 일단은 집중을 해야 해.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어. 분명 한 번씩 빠뜨리기도 하지.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나가는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해. 처음은 긴장하고 하고자 하는 일이 몸에 습관이 되게 만들고, 또 습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단계까지 올려놓고 그냥 생각 없이 하는 단계까지 가야 안심할 수 있어. 안 그럼 결단한 것을 잘 실천하다가도 그만 두기 때문이야. 우리 사회는 무엇이든 끝까지 완수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해. 기타, 책, 운동, 성공, 또 그 밖에 무엇이든 사람들은 대충 할 방법을 찾아낸단다. 정말로 성공하고 싶더라도, 적어도 성공하고 싶다고 말은 해도 말이야.
결단을 하고 난 뒤의 네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 불파만지파참(不怕慢只怕站)해야 해.
무슨 말이냐면 느린 것은 괜찮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나가면 된다는 뜻이야. 엄마의 노트북에 포스트잇으로 붙여져 있지. 그렇게 마음으로 되뇌고 입으로 말을 하면서 끝까지 해낼 거라는 다짐을 하지. 결단을 내린 것을 잘 실천해 나가면 네가 결단을 내린 것에 도달해 있을 거야.
셋째. 사명을 잘 지켜야 해.
아무도 태어나야지 하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그렇기에 태어날 때에는 세상에서 해야 할 어떤 의무가 있기 때문에 태어난 거야. 그래서 사명이란 것은 이 땅에 태어난 네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이야. 이 길은 누구나 있어. 하지만 다들 각자의 사명에 맞게 다른 길들이 펼쳐져 있어. 그런 길들을 요즘은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들 때문에 다들 일률, 보편적으로 맞추려고 하지. 그래서 주변의 시선과 참견이 많아. 너를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등장하지. 처음은 너 스스로의 인식이나 관념들이 너를 방해하러 등장할 거야. 네가 정한 사명을 테스트하러 ‘너 할 수 있겠어.’,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어때.’, ‘뭐하러 하려고 해. 편하게 있지.’ 등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올 거야. 시작을 했어도 계속 포기를 종용하지. ‘이 정도 노력했으면 됐어.’, ‘괜찮아. 아파서 그런데 뭘~’등등 너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해. 그리고 둘째 주변 사람들이야. 차라리 이건 쉬울 것 같아. 아예 주변에 뭘 하는지 알리지 않으면 되니까.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마는 신독을 행하고 있어. 마음을 다 잡아야 해. ‘한번 괜찮겠지.’해서는 안돼. 네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해. 그냥 눈앞에 있는 그 일, 네가 오늘 해야 하는 일을 그냥 하는 거야. 남의눈이 무서워서 하는 것 말고 네가 스스로 엄격한 눈을 가지고 채찍질을 해 나가야 해. 신독을 행해야 해.
신독(愼獨)은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가함을 말해.
혼자 있을 때가 자신의 교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할 절호의 기회이고, 자신의 입장이 흔들림이 없는지를 알아볼 순간이며, 자신의 능력이 강력한지를 알 수 있을 때야.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뭔가를 이뤄야 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여야 해. 끊임없는 자기 단속만이 조금씩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인 거야.(주3)
넷째,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해.
내가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다. 변하지 않는 우주의 법칙이 당신과 모든 인간을, 모든 사건을 평가할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은 보통 다른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반면에 우주의 한가운데에 선 사람은 다른 어떤 것도 연상되게 하지 않으며, 모든 창조가 그의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너무나 대단해서 주변의 환경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게 만든다.(주4)
존재감은 내가 나 스스로 나로 존재하는 거야. 나 세우기에서 가장 밑바탕에 깔린 것, 가장 기본이 되는 거야. 우주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고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고, 당당한 사람이어야 해. 나의 중심이 밖도, 안도 잘 있게끔 자기를 잘 세워야 해. 사회적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참된 선을 따라가야 하는 거야.
네가 어렸을 때 너의 목 가누기, 뒤집기, 앉기 등 성장 발달을 해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 아빠가 한 단계씩 넘어가는 것을 보고 감동받아했었지. 그리고 독서를 하면서 엄마의 새벽 시간이 즐거워지면서 집안이 더 화목해졌지. 이렇게 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의 것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자기야.
자기(自己)를 명심해.
스스로를 알고자 공부하지 않는 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아. 스스로를 잘 알기 위해 자기를 잘 들여다보는 공부를 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해. 확신에서 자신의 잠재력이 발현되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있어. 너 자신을 알고 행동해야 해.
항상 스스로가 별임을 잊지 말자.
다섯 번째, 자연의 이치에 순종해야 해.
자연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늘 속도가 일정하다. 싹은 마치 짧은 봄날이 무한히 길기라도 하듯이 서두르거나 허둥대는 일 없이 서서히 싹터온다. 자연은 무엇이든 자신이 하는 일 하나하나에 지극한 공을 들인다. 마치 유일한 목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과 달리 왜 인간은 극치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에 마치 영원보다 더한 어떤 무엇이라도 맡겨진 양 그다지도 서두르는 것일까?
몇 겁의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인간은 손톱 깎는 일 따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는 해가 마지막 남은 하루를 잘 마무리하라고 당신을 재촉한다고 여겨지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라. 항상 변함없는 고르디 고른 곡조의 울음소리는 지금의 시간을 영원으로 여기라는 충고가 아니겠는가!
현명한 사람은 늘 마음이 고요해서 들뜨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산책자와도 같은 모습이다. 반대로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축적된 피로가 쉬라고 강요하기 전까지는 다리 근육의 긴장을 풀지 않는다. (주4)
봄이 되면 우리 집은 텃밭에 가서 상추도 가지도 호박도 깻잎도 심고 열무 씨도 뿌리지. 그렇게 심어 놓으면 어때? 열무씨가 싹이 트기까지 매일 가서 물을 줘야 하지. 그렇게 싹이 트기 시작하면 자라는 것은 금방이지. 그리고 쑥갓도 모종을 심고 한참을 잎을 따먹다 노란 꽃이 나서 이뻐서 두면 금방 씨가 맺혀서 날리지. 관심을 가진다고 금방 자라지 않아. 시간을 두고 자기만의 속도에 크도록 놔두면 어느샌가 자라 있지. 그렇게 자기 종족을 보존하고 키워내는 것이 이치인 거야. 항상 자연에게 배워야 해. 자연이 말하는 게 다 이치잖아.
자연은 우리 바로 옆에 있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자연과 일치되어 있지. 조화롭게 자연과 교류하는 사람은 갖은 감정을 자연에 내맡긴단다. 그렇게 자연과 일치가 되지.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이불변응만변(以不變應萬變)해야 해.
자연의 사계절은 봐서는 변함이 없어 보이지만 하루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어. 네가 커가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오는 계절을 맞이하면 옷이 맞지 않는 것처럼 자연에 속한 너도 그렇게 성장하지. 거기에 사람의 마음에 따라 자연이 달라 보일 뿐인 거야. 만사는 그 원인에 의해 하나의 중심으로 귀결되는 거야.(주2)
소로우의 말을 기준을 삼아서 엄마는 연습 중이야.
이렇게 계속 기준을 잡는 것은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야.
젊은이는 지구와 달을 이을 다리를 세우기 위해, 아니면 지상에 왕궁이나 사원을 짓기 위해 부지런히 자재를 모으지. 그리하여 마침내 중년의 사내는 그 자재로 장작 두는 헛간을 지어.(주4) 아무리 멋진 자신만의 기준이 있더라도 결단을 하고 해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해. 그게 없으면 마지막 결과가 헛간을 짓는 일밖에 되지 않겠지.
아둔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은 기준을 적용하느냐 안 하느냐니까.
너의 기준을 적용해서 현명한 사람이 되는 쪽으로 가는 거야.
주1>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저. 구도자에게 보내는 편지.
주2> 랄프 왈도 에머슨 저, 자기신뢰철학.
주3> 쑨린, 쑨린의 어떻게 인생을 살것인가.
주4>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저, 소로우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