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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섭리

떡국

by 지음


오늘도 시장 방향과 전혀 다른 떡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떡순이인 나는 여러 가게를 옮겨 다니다가 떡국떡이 너무 맛있어서 가게 된 떡집이 있다.

처음은 다른 떡이 맛있어서 갔는데 떡국떡을 사서 끓여 먹은 후부터는 떡국이 떨어지면 꼭 그 집을 간다.


그리고 또 특이한 점은 아저씨가 손님을 기다리면서 책을 보신다.

독서대까지 구비해서 제대로인 아저씨의 독서가 진지해 보인다. 말은 안 했지만 내적인 친밀감도 쌓였다. 그래서 나는 이 떡집이 내 마음속 단골집으로 정했다.


오늘도 찰떡을 사러 왔다 떡국을 끓일 요량으로 떡국떡도 함께 산다.

주말 점심메뉴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정하는데 거기에 딱 떡국이다.


떡국은 미리 우려놓은 다시물만 있으면 라면처럼 아주 간단하다.

떡국떡과 약간의 소고기나 어패류가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잘 우려낸 다시물과 마늘다짐, 파, 계란... 그리고 간은 집간장으로

완성된 떡국에 화룡점정 구운 곱창김을 올리면 정성 들어간 한 끼가 완성된다.


강원도 사는 이모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다. 다시 국물을 우린다고 멸치를 우렸다. 다시 국물을 내고 난 멸치와 디포리를 건지는데 이모가 뜨거운 멸치를 호호 불며 뼈를 추리는 것이다. "이모 왜 그래?"라고 물어보니 웃으시며 호호 불어 입으로 쏙~ 나는 놀라기도 하고 웃겨서 막 웃었다. 먹어보라며 나도 하나 주신다. “음 괜찮은데~ 짠맛이 빠지고 담백한 맛만 남았어.” 어려서 클 때 이렇게 다시 국물을 내면 드셨다고 한다. 이모랑은 이것저것 재미로 같이 있으니 그 흥에서 하는 것이 활력이 된다. 재미있다. 이모랑의 추억 때문인지 한 번 먹어볼 때도 있지만 잘 우려진 국물의 멸치는 니맛내맛도 없다.


사실 국물을 빼고 나온 부산물들은 대부분 먹지 않는다. 다시 멸치는 국의 풍미를 살리는 것이 자신의 일이다. 저변에서 음식맛을 좌우할 만큼 큰 역할을 한다. 다시 국물을 넣어야 할 음식에 맹물만 넣으면 단번에 국물의 깊이가 표시가 난다.


건져진 다시 멸치는 희생이다.

자기 몸을 새끼에게 내어주는 가시고기

거름이 많이 필요한 호박에게 지력을 소진한 텃밭

자기 덩치보다 한참 큰 새끼뻐꾸기를 키우는 엄마 오목눈이


자연에서 어우러져 사는 것들은 무엇의 희생 위에 자란다.

나만 아웅다웅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 같다.

내가 가르칠 것이 없다고 다시 국물의 베이스처럼 안 보이지만 보이는 그것만 잘 잡아주면 된다고 계속 되뇌인다. 그 다음은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방법을 세상에서 배우게 놔둬야 한다고 또 다짐한다.

자신이 책임질 만큼의 일을 해내면 되는데 그것보다 더 하려 하거나 덜한 것에서 항상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맹국물 맛을 내기 위해 다른 첨가물을 넣는 것처럼 나의 삶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는지 돌이켜 본다. 엉뚱한 곳에 힘 쏟고 있는 나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다시 돌려놓는다.

그럴 힘이 생긴 것이 참 다행이다.


다행히 김가루가 올라간 떡국이 다시국물덕에 맛있게 되었다.

아이들도 맛있게 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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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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