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네~ 추석이다.
우리 집이 차례를 지내는 집이 아니다 보니 날짜 관념도 사라지고 그냥 주말 같은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은 날들 중에 하나인 날이 되어버렸다.
대명절의 설렘은 과거의 어린 나에게만 해당이 되는 말이다.
그래도 이번 연휴는 뒤로 길어서 친정에 다녀오기로 한다.
추석 전 날 전화하니 조촐하게 차례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의 유지를 받아 제사도 차례도 지내지 않을 거라 엄마는 말했다. 하지만 지나치기에는 섭섭하셨나 보다.
어릴 때의 기억이 소환된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쉬는 날이라고 나가서 놀지만 나는 집에서 엄마를 도와야 했다. 막내며느리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부모님이 대소사의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런 집의 딸이 정말 싫었다.
어느 순간부터 전은 내 담당이었다.
그것을 안 하고 놀러 나갔다면 아마 해방된 민족이었을 테지만 내가 안 하면 엄마 혼자 다 해야 된다는 생각에 나가 노는 것을 포기하지만 또 마음은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가 놀아라고 말하지 않는 엄마에게 섭섭했다.
그래도 내가 전을 부치는 것이 미안했는지 엄마는 나보고 막내아들에게 장가가라고 말했다.
‘아빠도 막내야. 근데 지금 우리 집에서 차례상 지내는데 뭐~!!’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엄마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 자신은 제사며, 차례를 지내는 것을 목숨처럼 해왔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평소 다른 말을 하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납골당에 갇혀 지내는 것이 싫으시다고 바닷물이 잘 순환하는 그곳을 정해 알려 주셨다. 거기에 한 줌 가루가 된 자신을 뿌려 달라고. 훨훨 바다 따라 여행하며 다니시겠다고.
그것이 아빠의 진심이었을까? 진심이라 생각한 말 이면의 진정한 뜻은 없었을까?
조상을 모시는 일은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던 아빠이다.
하지만 정작 아빠 자신은 음식을 하지 못하신다. 아니 하시더라도 그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빠가 장남이라서 이것저것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선택권은 없는 자리. 그 자리가 엄마의 자리였다. 젊은 시절 철 없었던 아빠는 연세가 드시면서 엄마의 고생이 눈에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 분란들을 겪으면서 싸우고 정성을 다하지 않을 것 같으면 지내지 말라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대신 가족들과 모여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것이 아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나 보면 힘들었던 일들이 나의 능력을 키워놓고 갔다.
당시에는 아무 쓸모없는 일이라 생각하던 일들이 뒤에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우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도와 일을 한 것이 음식을 나름 하는 사람으로 키워졌고, 없는 기구나 재료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하는 융통성도 키워졌다.
그리고 내 주방에서는 뒤통수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남한테 짜증 부리지 말고, 나에게 화내지 말고 그냥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몰라서 생겨나는 후회도 그냥 아무말 없이 제자리를 찾아 할 일만 묵묵히 한다면
묵묵히 하는 행동 하나만으로도 많은 일들이 후회하지 않는 일들로 바뀌어 있을 것임을 안다.
후회하지 말고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