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할아버지

- 삶과 죽음 -

by 지음


위층에 사시는 할머니가 내려오셨다.

나갈 일이 없어진 내 생활 패턴이 할머니에게 걱정을 안겨드렸나 싶었다.

“새댁 이사 간 줄 알았어.”

난 아직 할머니에게 새댁이다.


아줌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없던 오지랖이 생겼다. 스멀스멀 궁금증 보따리를 풀어본다.

“제가 집을 잘 안 나가서 그런지 할아버지를 요즘 통 뵙지를 못했어요.”

“아... 할아버지... 돌아가셨지. 작년 봄에 돌아가셨어.”

너무 놀랐다. 치매가 심했지만 할머니가 깔끔하게 입히고 닦아주셔서 그런지 할아버지는 항상 목욕탕에서 갓 나온 뽀얀 어린아이같이 다니셨다.


한 번씩 엘리베이터 타는 법을 잊어버리셨는지 새벽에 한 번씩 1층인 우리 집 번호키를 누르신다. 말을 들어먹지 않는 번호키 앞에서 좌절도 없으셨다. 벨도 누르시지 않고 비밀 번호만 열심히 누르신다. 그러다 화가 나시면 천둥소리 같은 발차기가 시작된다. 자다 말고 쿵쿵 소리에 놀라 깬다. 몇 번을 겪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또 우리 집으로 오셨구나’라고 엘리베이터를 태워서 문 앞까지 모셔다 드린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의 그 소동이 한동안 잠잠했음을 그제야 느낀다. 내 삶을 산다고 그런 것도 잊고 살았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할머니랑 서 있는 사이사이에 들어오는 찬바람에 마음이 횅해진다. 한 번씩 신랑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투덜거렸던 것이 미안해진다.

‘마음 좋게 모셔 드릴걸...’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일상은 똑같이 흘러가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것과 정말 사라진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할머니의 상실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없다. 내 후회에는 빗댈 수 없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호스 같은 관이라면 삶은 관의 한쪽 끝에서 시작해 반대 끝으로 관통해서 마지막은 죽음에 이른다. 그 호스를 양쪽으로 이으면 끝점이 다시 시작점이 된다. 살아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라고 결국은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라 말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두렵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은 하루하루 삶을 잘 사는 것인 것 같다.


아마 못해 준 것이 많이 생각나는 것도 그 순간을 감정에 치우쳐 충실하게 살지 못해서 드는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을 방해했다고 투덜이로 빙의하지 않고 좀 더 다정하게 대했다면 이런 후회가 남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현자의 정신은 온 힘을 다해 죽음에 이르려하고, 죽음을 바라며, 죽음을 명상하고, 죽음에 대한 이 욕망을 끊임없이 죽음의 깨달음이 있는 저 먼 곳으로 몰고 간다고. (주1)


내 죽음에 대해서는 정작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여러 면에서 잘 살다가 잘 죽고 싶다는 막연함만 있을 뿐이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충실한 삶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잘 모르겠지만

충만한 삶에 대한 욕심을 채우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주 1> 인생철학이야기, 세네카, 동서문화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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