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엄마, 정말 수달이 나타날까? 사람들 소리에 시끄러워서 숨지 않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고, 운 좋으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눈이 반짝반짝한 아이들에게 볼 수 있다 말했지만 사실 수달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은 두말도 없이 있다는 믿음에 수달을 보러 가기 위해 우르르 챙겨서 나온다.
수달이 ‘있나, 없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수달을 볼 수 있을까, 없을까를 걱정하는 아이들에게서 순수함이 묻어난다.
물이 맑은 강가라고 해도 동물원에서만 헤엄치는 수달만 보아온 나는 ‘수달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하지만 아이들의 성화에 따라 나서 본다. 어쩔 수 없이 보호자 모드가 된다.
숲 해설가를 꿈꾸는 지인이 아무런 사전지식 없는 우리에게 수달에 대해 갖가지 설명을 해주신다. 아이들은 수달을 볼 기대에 부풀어 듣는 둥 마는 둥 즐거운 발걸음으로 강가로 향한다.
먹이가 지금 없을 건데 어떻게 사냐는 질문에 동면한 개구리를 잡아먹고살다가 날이 풀리면 민물고기도 잡아먹고사는데 마침 여기가 개구리도 많이 사는 곳이란다. 수달도 원래는 하류 어딘가에 살지만 영역싸움에서 져서 아마 위로 올라온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참 신기하게도 수달이 살만한 서식지에 딱 들어맞는 곳이 그 강가였다.
수달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강가와 비교가 되면서 더 믿음이 생긴다. 그냥 아무것도 모를 때와는 믿음에 천지차이가 되어간다. 역시 사람은 새로운 지식이 힘이 되고 없던 믿음도 생기게 만든다. 지인에게 수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수달이 있다는 믿음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수달 똥이다~!!”
군데군데 똥이 있다. 아침나절에 싼 것 같은 똥도 있었다. 신기하게 정말 하얀 생선 가시가 보였다. 이제 아이들보다 내가 더 관심을 가지고 수달이 살 만한 곳을 주시해 본다.
“수달도 우리를 보고 있을 겁니다.”
지인의 말에 어디서 눈이 마주칠지도 모르는 순간을 위해 여러 방향을 주시하며 휘휘 훑어본다. 배수로가 유력한데 드려다 보려 해도 진짜 눈이 마주칠까 오만 걱정에 용기 내어 볼 생각도 못했다.
지인이 설명해 주신 수달에 대한 지식으로 수달이 우리를 지켜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마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으면 우리가 보는 똥이 개똥인지 뭔지 모르고 수달이 사는 곳인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입으로 믿는다고 말하지 않고 흡수된 믿음이 행동을 하게 만드는 힘이다.
믿음 이전에 관심과 호기심이 있어야 믿음에 씨앗이 생긴다. 그렇게 호기심에서 찾게 된 숲해설가 지인의 지식으로 믿음이 생겼다.
상태에 믿음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옮겨가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원하는 상태가 형체를 취하고 객관적인 현실이 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상태' 안에서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인내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낡은 것들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것을 자라나게 하는 데에 일단 성공하게 되면,
그 후에 쉽게 인내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우리가 이해를 통해 얻은 것에 따라 우리는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는 인내의 비결입니다.(주1)
주1>네빌고다드의 부활, 네빌고다드, 서른세개의계단,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