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당한 생각 -
홀수인 우리 가족.
4명인 사각 식당 테이블.
다섯은 어딜 가나 조금은... 불편한 인원수였다.
칼국수 사장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쩌다 줄이 긴 칼국수 집을 가게 되었다. 보통 식당은 5명이라면 하나의 테이블에 의자를 한 개 더 가져다준다. 근데 그 집은 테이블을 붙여 2명 3명 앉을 수 있게 해 주셨다. 나에게는 색다른 풍경이었다. 스스로도 한 테이블에 5명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테이블을 주셔서 잘못 주신 줄 알았다.
왜 다섯 식구면 비좁은 테이블을 다 같이 쓰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했을까?
그건 나의 문제였다.
어릴 때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을 갈 때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어릴 때는 저지레가 많으니 먹고 난 뒤 항상 뒷정리를 단단히 하고 나오기 바쁘다.
그것이 다 커서도 습관이 되어 미안한 감이 남아 있었다.
똑같은 돈을 내고 한 사람당 하나의 메뉴를 시켜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어린아이도 아닌데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맛집 위주가 아닌 번접하지 않은 집이나 끼니때를 약간 비켜난 시간 때를 맞춰서 가기도 했다.
근데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을 받고 가시는데 이제껏 내가 당연하다 생각한 내 안에 고정관념들과 이제껏 5명씩 비좁은 자리를 배치한 음식점들이 생각이 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를 우리가 상상하는 공정한 방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도록 노력한다. 만약 우리 자신을 공평무사한 방관자의 입장에 놓았을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 모든 격정과 동기에 완전히 공감한다면, 우리는 가상의 공평한 재판관의 시인에 동감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행위를 시인한다.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공평한 재판관의 부인에 공감하여 우리 자신의 행위를 책망한다.(주1)
갑자기 내 머릿속이 혼동이 왔다. 내 안에서 매번 5명이 같이 앉는 것이 옳다고 아니 그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두 가지의 생각들이 각자의 근거를 가지고 피력을 한다. 이제껏 해온 행동이 옳은 행동인 줄 알았다. 물론 적정선에서는 같이 앉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테이블도 있었다. 그런 곳 말고 진짜 비좁은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그냥 빨리 먹고 나가자고만 하고 그 자리에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그제야 돌아보니 두 명씩, 세 명씩 온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칼국수 사장님은 아이들도 한 명의 몫의 자리를 배정해 주신 것이다.
“외식하러 나왔는데 편하게 먹어야지~” 무심한 듯 말하지만 그 고충을 아는 듯한 말에서 사장님의 진심이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비치는 엄마의 모습은 어땠을까?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미안해하는 엄마의 모습.
미안한 존재가 아닌데 그런 뜻은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이제는 비좁은 곳에서는 불편을 감수하고 앉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테이블 나눠서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될 근거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주1> 도덕 감정론, 애덤 스미스, 비봉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