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찌개

-가능성-

by 지음

비지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뭐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의 주문보다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 정하기로 했다.


바닷가가 고향인 나는 비지찌개를 먹으며 자란 사람은 아니다. 처음 비지찌개를 실물로 영접했을 때 그냥 그냥 별로 썩 맛있게 보이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묵은지를 씻어서 그런지 먹음직스러운 빨간 비주얼도 아니었고 뜨거움을 숨기고 있었던 비지찌개가 품고 있는 뜨거움을 몰라 입천장을 전부 데일 뻔했다.


콩의 모양새가 전혀 없는 첫인상에서 비지찌개가 콩으로 만들었다니 새삼스럽다. 콩의 본연의 모습 그대로의 콩자반도 있지만 콩으로 만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식재료로 탈바꿈한 것이 많다. 된장, 두부, 비지, 두유, 콩나물등 모양새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지고 각각의 쓰임도 달라진다. 콩이라는 본질에서 다시 각자의 개성을 가진 식재료가 되어 밥상에 오른다.


콩이 변신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콩은 달지도 맵지도 시지도 않는다.

심심한 맛, 그것이 콩의 힘인 것 같다.

본연의 심심한 자태가 어떤 것이든 새롭게 변신하게 해 재탄생시키는 힘이 나온다.


된장이 되기 위해 품어내는 긴 시간을 견디고, 두부가 되면 부드러움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비지가 되면 풍만함으로 가득 차게 만들고, 두유가 되면 고소함으로 어서 모이게 만들고, 또 콩나물이 되면 아삭함으로 평소와 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형태는 달라진다. 하지만 콩의 본질은 그대로 살아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나는 어떤 매력을 지닌 사람일까?

콩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겠는데 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매력이 있는지, 매력이 뭔지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살지 않았다.

나의 존재, 나의 정체성, 나의 매력등 나의 것에 대해서는 별생각 없이 살았다.


어른이 되면서 온건한 외관을 갖추는 듯하지만 지속적인 평정에 이르렀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거친 바다에서 쉴 새 없이 좌우로 기우는 배처럼 인생을 가로지르며 나아갈 뿐이다.

우리의 타고난 불균형은 실제적인 요구 때문에 더욱 악화된다. 일 때문에 우리의 좁아터진 범위에 한정된 능력은 무자비하게 시달리며, 그 바람에 원만한 인격을 달성할 가능성은 줄어들고, 지금까지 살면서 우리의 존재 또는 우리의 가능성 가운데 많은 부분을 탐사해보지도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빠져들곤 한다.(주1)


일상에 산재되어 있는 당장해야 할 일들에 갇혀 내가 가진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내 안에 가능성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가능성이라는 녀석이 없는 것 같아 서글프다.

어쩌면 나는 찾아본 적 조차 없다. 가능성을 원했지만 또 원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모험은 부담스럽고 안정은 갖고 싶은 욕심만 많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나의 상태를 스스로 느끼지 못하게 그냥 빠르게 현재 처한 상황이나 심정을 지나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비지찌개를 먹으며 갑자기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생소하다. 그 생소함을 피하려고만 애쓰고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가능성의 생소함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그냥 맞부딪혀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 늦게 찾아왔다면 정말 못한다고 나가떨어지면서 후회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딱 시기적절할 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생소하지만 한 번쯤은 제대로 생각해야 하는 나의 가능성은 뭘까?

심심한 나, 특징이 없이 평범한 나.

나를 떠올리면 아주 밋밋한 수식어가 붙는다. 콩처럼 말이다.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찾아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더더욱 생각해서 들춰보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아직 콩자체인 것이다. 발효된 콩도 아니고, 두부가 된 콩도 아삭한 콩나물이 된 콩은 더더욱 아닌 아직 물에 담그지도 않은 ‘콩’ 말이다. 가능성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더해져서 변형되는 것인데 그쪽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아직 잠재된 가능성을 탑재한 잼뱅이인 것이다.


콩도 이렇게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는데 난 내 가능성을 왜 한번 더 찾아보지 않았을까?

어떤 면에서는 내가 모르는 나의 경험들이 쌓여서 발효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또 다재다능한 콩처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아주 많은 가능성이 내 안에 있지 않을까?


심심한 콩처럼 특징 없는 나도 어쩌면 어디에다 놔둬도 잘해나갈 수 있는 힘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서나 자신이 쓰일 수 있는 모든 곳에 쓰일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면 아마도 어디에서나 가능성은 노다지일 것이다. 그 노다지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면 가능성의 크기도 저절로 커질 거라 믿는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무슨 사춘기도 아니고... 사춘기만 가슴이 뛰라는 법은 없으니까.

일단 눈 부릅뜬다. 그래야 뭐가 보여도 보일 테니까.

가능성이니까 군소리 말고 저항하지 말고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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