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면 -
친정에 내려가니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이 났다.
안방 침대에 누워 시선은 가족사진으로 향한다.
결혼하기 전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웃는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사님의 노력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자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웃음이 났다. 사진이 나왔을 당시 거실에 있던 사진이라 방문한 지인들이 사진 잘 나왔다며 칭찬 일색이었던 가족사진인데 말이다.
그 당시에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주 사소한 일이었던 것 같다. 가족사진 찍기에는 복장이 이상하니 그런 사소한 일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꾸역꾸역 사진을 찍으러 다 같이 갔다. 하지만 본심은 처음 찍는 가족사진을 더 잘 나오게 하기 위해 의견을 나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사진은 찍어야 한다는 일념이 있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고 오면서는 투닥거렸던 것은 싹 잊고 사진사님이 우리 때문에 애써주신 부분에 이야기하며 감사함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온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 대한 맹렬함에서 가족애를 느끼는 걸까?
추억으로 보이는 이 장면 하나가 우리 가족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런 맹렬함 뒤로 아무렇지 않게 또 웃음으로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우리 가족의 특징인 걸까?
우리가 지금 있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허영이다. 이런 욕망의 결과는 그 자체가 모순되는 것이니,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자기가 천사 같은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를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아니며, 그 대문에 조금도 더 나아지지 못할 것이다. 그가 없어진다면 자기를 위한 이 보수를 누가 즐기며 느낄 것인가?(주1)
어쩌면 내가 이제껏 해 왔던 행동들로 인해서 나타난 결과인데 그것을 부정한 것일까?
우리 가족에게 맞는 대화 방법을 무시하고 나만 좋은 방식을 찾고 있지 않았을까?
가족이 없었다면 이런 고민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주1>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