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과의 대화

-공감-

by 지음

“엄마~ 간다.”

“그래~ 잘 가고 도착하면 전화하고~”

“알았다. 엄마~ 간다”

손을 흔들며 바리바리 싸주신 짐을 택시 뒷좌석에 밀어 넣고 나도 재빨리 자리를 잡는다.

백팩도 무거워 잠깐 풀어놓고 싶었지만 10분 뒤에 내릴 거라 등에서 내리지 않고 앞 좌석 헤드 부분을 잡고 비스듬히 앉았다.


기사님이 우리 모녀를 다정한 모녀지간으로 봤나 보다.

“배웅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기사님 말을 듣기까지도 별생각이 없었다. 기사님 덕에 배웅을 해주시는 엄마에게 감사함보다 당연하다는 생각? 아니 당연함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기사님 덕에 내 무지가 드러난다.

이런저런 생각의 찰나에 기사님은 기사님 어머니 이야기를 벌써 시작하셨다.

기사님의 어머니는 배웅을 한 번도 해주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

군대를 갈 때도, 직장을 찾아 집을 멀리 떠날 때도 배웅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냥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데 뭔가 쓸쓸함이 묻어났다. 외로움까지는 아닌데 한 번도 배웅을 받지 못한 기사님만의 헛헛함 같은 응어리가 느껴졌다.


“어머니가 배웅을 안 해주셔서 섭섭하셨어요?”

물음으로 말을 했지만 답을 들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에서 툭하고 나온 말이었다. 잠깐 생각하시느라 침묵이었지만 곧 말을 이어가셨다.

그 뒤로는 봇물 터지듯 기사님의 속 안에 이야기가 나왔다.


짧은 10분 만의 대화에서 겉으로 훑은 내용이 아니라 진짜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셨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듣고 싶었다. 뒷좌석 깊이 파묻어 앉은 자세가 아니라 앞으로 당겨 앉은 자세라 그런지 기사님의 모든 표정이 다 보였다. 아니 백미러로 눈만 보이는데 얼굴 표정이 읽혔다. 한 번씩 눈 마주치면서 듣는 내내 너무 공감이 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때 어떻게 나는 기사님의 마음이 읽혔을까?

말하는 내내 진심이 느껴졌다.

아무 말하지 않지만 들리는 것도 있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을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는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지만 한 치의 오차 없이 나의 언어로 번역되어 그대로 들린다.

상대를 공감한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 기류에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인 것 같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어머니는 왜 배웅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누님들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나요?

누님들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때 기사님의 마음은 어땠나요?


강의의 상한(上限)이 공감입니다.

의문을 갖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공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닙니다. 공감. 매우 중요합니다.

"아!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것은 가슴 뭉클한 위로가 됩니다.

(중략)

에피쿠로스는 우정이란 '음모(陰謨)'라고 합니다.

음모라는 수사가 다소 불온하게 들리지만 근본은 공감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작 불온한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소외시키는 소외구조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음모는 든든한 공감의 진지(陳地)입니다.

소외구조에 저항하는 인간적 소통 (疏通)입니다.

글자 그대로 소외(疏)를 극복(通)하는 것입니다.(주1)


마음의 응어리만 조금이라도 풀리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서 묻고 또 묻고 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남자로서 불행하다는 말이 너무 가슴 아프다.

기사님도 과거에 갇혀 살지 마시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셨으면 한다.


자신을 드러내놓고 싶은 마음과 달리 말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속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사님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1> 담론, 신영복,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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