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다시 오롯이 홀로 책상에 앉았다.
나만 챙겨도 되는 엄마 방학의 시작이다.
방학 내내 집에서 복닦거리던 아이들의 개학 첫날.
바쁘게 깨워서 학교에 보냈지만 딸아이 방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아이들이 등교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참! 학교 갔지!’
내 정신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분주하게 챙겨 내보낼 때 언제고 갑자기 생뚱맞은 해방감은 왜일까?
순간 약속을 할까 고민을 잠시 하다가 그만둔다.
나는 시장을 가는 것도 한 바퀴 산책을 하는 것도 커피를 한잔 마시는 것도 언제나 함께였다.
1년 정도 전부터 밖에 나가 다닐 때도 혼자 나가는 버릇하니 혼자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먹고 싶은 메뉴도 혼자 먹어야 하니 나만의 취향을 생각하게 된다.
소소한 하나하나에서 점점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커피를 한잔 타와서 책상에 앉는다. 따뜻한 커피도 좋지만 한참 열중 후 마시는 식은 커피도 맛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식은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모른 채 그 누군가에 신경 쓰느라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지인들을 도통 안 만나다 만나면 조금 사회성이 떨어지고 내 위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근데 그것도 나쁘지 않다. 민폐가 아니라면 그냥 그렇게 놔두고 싶다.
처음은 책 읽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해서 서서히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줄였다.
결단했지만 책을 읽다가도 나가야 될 듯 엉덩이가 덜썩거릴 때가 있었다. 아마 그 몇 달을 견디지 못했다면 홀로의 시간을 끝끝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주어졌다. 만나자고 전화 오면 그냥 당연하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있다. 나와 한 약속도 약속이다. 다른 약속으로 해야 할 일을 저버리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홀로 있는 것은 내 정신,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일까?
내 존재감은 내가 챙기고 사는 줄 알았다. 아니, 존재감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비싼 명품에 흥미가 있는 것도,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 다니는 것도 아니었기에 존재감을 잘 챙기고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존재감은 밖에 친구들에게 가 있었다. 따로 약속이 없어도 만나자면 열 일 제쳐두고 만났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내 존재가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내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더 이상 ‘고독은 나를 더 이상 달랠 수도 없고, 아프게 할 수도 없는 독약과도 같았다. 나는 그 독성에 대한 저항력이 충분히 강해질 만큼 고독을 많이 마셨다.(주1)’ 힘들 때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해서 위로받아야 하는 나는 이제 없다. 나만의 기준을 찾던 나는 심지가 단단해짐을 느낀다.
지금은 홀로 있어도 가만히 커피를 마시고 있어도 키보드를 누르는 순간에도 내가 나를 알아봐 준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봐준다. 잘난 나도, 못난 나도 그냥 지켜봐 준다.
부끄러워하는 나도, 눈물 흘리는 나도, 화가 난 나도 모두 모두 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행동을 하는 못난 나를 숨기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것은 홀로 책상에 앉아서 나를 돌아보면서 축척된 힘이다.
하루의 순간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은 홀로 있는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