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바랐을까?

- 마음-

by 지음

아빠 제사를 마치고 난 다음날.

바리바리 음식이며 아이들 좋아하는 무언가를 싸는 엄마.


나물을 무치면서 우리 집에 가져갈 것은 따로 담아두셨다며 챙기신다.

나물밥과 잘 어울리는 마른 생선 찐 것들을 가지가지 담으신다.

아이들 왔을 때 막내가 좋아하는 고등어를 구워 주시고 남은 고등어들을 싸주신다.


평소 나였으면 무겁다고 조금만 담으라고 분명 말했을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따리 보따리 싸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순간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잊지 않고 잘 싸서 보내기 위해 매의 눈처럼 주방을 살핀다. 무엇인가 딸내미 손에 들려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전달되었다.

“너거 가고 나면 꼭 빠뜨리고 보낸기 생각이 난다.”


엄마의 그 표정이, 어린 내가 엄마에게 바라던 마음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충족감이었다. 언어로 표현을 하던 행동으로 표현을 하던 나는 엄마에게 정확하게 사랑받는 아이라는 것이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달라졌다.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와 나, 아이들과 나로 시야를 좁혀 계속 서로의 관계를 비교하고 있었다.


많은 물체는 설령 그것이 우리의 가시광선 범주 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지식 광선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1)


어릴 때 기억은 감정만 남아있다. 현재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삶에 엄마와의 감정들을 투영시킨다. 그때 엄마랑 세세하게 마주했던 사실은 다 증발되고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봐도 본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사랑한다 표현을 전해도 내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왜 그때는 느끼지 못하는 것을 지금은 느끼는 걸까?

엄마를 멀거니 쳐다보고 있는데 느껴졌다. 분주한 모습에서 느껴졌다. 분주한 모습 너머 엄마의 진심이 와 닿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때의 엄마 나이가 내 나이이다.

지금의 나도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근데 엄마에게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때의 엄마를 엄마라는 역할을 떼어 놓고 봐 본다.

한없이 가녀리고 작은 체구에 지킬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감정이 흐르는 대로가 아닌 내 의지를 들여서 감정은 옆으로 앉혀두고 엄마를 바라본다.

좁은 시야에서 보이는 대로가 아닌 대가족 내에서 엄마를 바라본다.

내가 엄마의 어떤 부분을 볼지 결정한다. 또 어떻게 생각할지 결정한다.


틀에 가둔 엄마와 딸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으로 엄마를 본다면 어떨까?

지금과는 다른 해석이 나올까?

엄마와 만날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는 나와 현재에 있고 싶은 엄마가 싸우는 것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주1> 소로우의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도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5화시선 강탈, 그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