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깨기-
어쩌다 보게 된 영화.
내 머리에 구축된 인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농인 가족의 이야기이다.
농인의 삶도 청인이랑 별반 다를 것 없다.
다만 다른 점은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인 부모는 딸아이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의 무대 위의 모습을 보고 시각적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이야기한다.
“빨간 원피스가 잘 어울린다.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아이의 노래에 집중하지 못하고, 저녁에 뭐 먹을지, 마트에 들렀다 가자고 서로 수화로 대화를 한다. 너무 안타까웠다. 아이의 부모보다 딸아이에게 감정이 더 이입이 되었다. 스크린 밖에 있는 나도 딸아이의 노래에 빠져 감동받고 훌쩍거렸다. 하지만 딸에게 소통을 의존했던 부모님은 주변을 살피지 않았다. 그렇게 노래가 끝이 나자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제야 아빠는 딸아이의 노래 솜씨가 심상찮음을 느낀다.
두 번째 무대의 노래를 감독은 영화 자체에 음소거를 시켜 부모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화면에서는 노래를 하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아빠의 시선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간다. 딸아이의 노래를 듣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듣지를 못한다. 아빠는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의 틈이 깨지는 순간인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내 인식이 깨지는 순간이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봐야 하는데 나는 내 감정을 넣어 부모를 판단하고 있었다. 내 경험은 들을 수 있는 청인의 경험치밖에 없는데 영화 자체 음소거로 농인의 심정을 간접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농인 부모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내가 볼 수 있는 관점이 두 개가 되었다. 하지만 그 무대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관점이 있다. 그리고 각자의 관점에 따라 주관적인 생각들이 다 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조건을 유산으로 받아 놓고 있다. 이 마음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마음만이 현실의 유일한 결정론자라는 전제의 왕관을 과감히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헛된 마음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인생의 영화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려고 한다. 마음은 마음에 비치는 경험을 진정한 것으로 납득시키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각 개인은 저마다 자신의 세상 경험만이 정확한 것이라고 비밀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주1)
나도 내 삶에 비춰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하였다. 가만 보니 아이들에게도 나의 경험에 비추어 대화를 했다. 적확한 공감이 아니었다. 내 삶이 투영된 이야기는 완전 공감을 했고 아닌 이야기는 공감을 할 수 없었다.
그럼, 타인의 이야기를 내 삶에 투영하진 않고도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호기심을 가지고 묻고 그 상황을 추측 말고, 정확하게 물어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공감은 되지 않는 부분을 공감하기 위한 노력이다.
인식을 깨부수려면 연습만이 살 길인 것 같다.
어떤 상황들이든 관심을 가지고 내 인식으로 보는 것이 있는지 의식의 문을 열고 배우려는 자세로 뭐든 임해야겠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것도 나의 인식?? 이 나이면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주1> 의식혁명, 데이빗호킨스, 한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