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이 낡은 옷

-예민함-

by 지음

3월이 한참 지나 중순이다.

벚꽃이 피려면 한참이 남은 계절이지만, 아이들은 벌써부터 겨울옷을 벗어내기 시작한다.


겨울 내내 아이들은 키가 부쩍 컸다. 겨울 초입에 산 옷들도 짤뚱해졌다. 이번 겨울이 마음에 들어 산 옷들이 내년 겨울까지는 입지 못할 것이 기정사실이다. 아이들에게 버릴 옷을 스스로 정리해 보라고 말하고 난 신발 정리를 한다. 작아진 신발을 버리지 못하고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었었다.


막내는 옷도, 신발도 한결 같이 입는 옷만 입는다.

신발은 새것을 신지만 옷은 형아에게 물려받은 것만 편하다고 입는다. 많이 입어서 소매가 닳고 옷색깔도 희미해져서 칼라풀하던 옷도 회색빛이 돈다.


“엄마가 셋째라고 완전 신경도 안 쓰고 막 키운다고 소문나겠다!”

아이는 이런 말쯤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편하면 최고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막내는 모든 면에서 까다롭다.

청각도 예민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나온 적도 있다.

미각, 후각, 시각이 예민해서 음식을 먹을 때 항상 냄새, 맛, 보기에 좋은 것을 찾는다.

여러모로 까다로운 아이다. 그런 까다로움이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까 어느 선까지는 의무적으로 하도록 데드라인을 만들어하게끔 했다.


근데 문득 내가 아이의 열린 오감을 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감각으로 스스로가 어떤 것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는 순간을 엄마인 내가 막아섰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뭐든 잘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나는 그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아이에게 음식도 싫어하지만 한번 먹어보라고 말했고, 극장도 데려가서 보라고 했던 것 같다. 섬세한 부분일 수도 있는 것을 까다롭다고 미리 단정 지어 생가했다.


까다로움과 예민함의 미묘한 차이를 잘 알아챘어야 했다.

오감이 발달했다는 것에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다 공존한다.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잘 살폈다면 두 가지를 잘 구분할 수 있었을까?

아님 내 인식이 아이를 예민한 아이라고 생각했을까?

예민함을 까다로움으로 단정 지었다.


우리는 대개 생각의 결과들을 믿음의 체계로 바꿔서 그것을 신봉하면서 산다. 이 믿음의 체계를 가지고만 세상과 접촉한다. 이때 인간이 상실하는 가장 큰 자질이 바로 ‘예민함’이다.(주1)


어쩌면 예민함을 가진 아들에게 예민함을 상실한 엄마가 너도 엄마 닮아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았나 미안해진다. 그 예민함이 성숙한 직관으로 키워진다고 하는데 한참 자신을 표현하는 중인데 몰랐다.

예민함과 민감함의 한 끗 차이를 잘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시급하다. 정말!!



주1>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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