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의 표시

-공감2-

by 지음

나는 왜 그릇도 안되면서 아이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아이의 모든 일에 내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서 결론은 나지 않는다.


다음날 조목조목 사실과 감정을 따로 적어본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문제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실과 감정을 분리시키지 못해 일이 크게 보였다.

사실만 보면 되는 것을 감정을 더해서 더 부풀려졌다. 걱정했지만 걱정 뒤에는 나에게 화가 난다. 아이 일에 더더욱 큰 시선으로 보려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엄마가 아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나는 아이의 성장보다 내 감정에 치우쳤다.

나 스스로 먼저 마음의 균형을 잡고, 사랑을 바탕으로 훈육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이 앞에서 엄마의 걱정 섞인 표정에서 끙~하고 내뱉는 신음에서 아이는 벌써 엄마의 괴로운 심정을 읽어버렸다. 나는 아이의 말을 잘 듣고 싶었다. 그렇지만 감정이 먼저 나가 버렸고,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공감을 못한다는 것을 들켜버렸다.


사랑은 예외 없이 양방통행이며 받는 사람이 줄 수도 있고 주는 사람 역시 받을 수 있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현상이다.(주 1) 공감하고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서로의 대화에서 물꼬가 트였을 수도 있었다. 아이는 나에게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표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왜 아이 일은 아이에게 맡겨놓고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할 수 없을까?

내가 아이의 말을 잘 이해했을까라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표정과 한숨으로 아이의 입을 막지는 않았을까?

아이가 제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표정에 멈춘 건 아닐까?

진심으로 들으려면 오로지 그 시간을 오로지 아이에게 바쳐야 한다. 즉 그 시간은 아이의 시간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에 자신의 걱정거리와 전념하고 있는 일을 포함해 기꺼이 모든 것을 제쳐놓을 마음이 없다면 진심으로 들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주 1)


상호 독립이란 말을 알고부터는 그것을 지향하려고 노력중이다.

그 속에는 '따로지만 또 같이'라는 말이 숨어 있다. 아이와 분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이왕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 아이에게 좀 더 긍정적인 피드백을 줬으면 어땠을까?

엄마의 관심의 밀도는 함께 하는 동안 얼마나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에 달린 것 아닐까?



주1> 아직도가야할길, M스캇펙, 율리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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