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

- 이면 -

by 지음

자기가 가진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뜻일까?

당연하다는 말에 내 안의 시선이 멈춘다.


큰아들이 자신이 가진 환경에 대해 당연하다고 표현을 했다.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유년시절에는 없던 모든 것들을 아이가 당연해하는 것이 앞뒤도 없이 화가 났다.

나는 자신이 만족하는 환경에 살 수 있는 것도 부모의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과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내 인식 속에서, 내 경험에서 당연함은 어떤 것이 익숙해져서 그냥 있는 그대로 한 없이 편해지는 것이다.

근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또 다른 이면이 있었다.

당연하다는 말은 ‘일의 앞뒤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틀림없이, 한 치 오차도 없이, 의심도 없는 상태에서 당연함이 나오는 것 같다.

아이는 부모를 믿었다.

부모를 믿는 마음도 그 당연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와 나의 당연함은 같은 것이었다.

당연함 속에는 권리만 들어있어 줄 알았는데 의무도 들어있었다.

각자의 관점에서 본 당연함이 달라 보였지만 그 당연함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내 가족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내 속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주 기꺼이 내 마음과 내가 그들에 관해서 판단한 것을 누구에게나 알려 줍니다. 나는 내 마음을 알려 주고 내 속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나는 좋건 그르건 사람이 나를 잘못 이해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주1)

나는 얼마나 아이를 이해하려고 했을까?

내 좁은 틀에서 이해하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무슨 뜻으로 이야기했는지 다시 물어야 했다. 소통하고자 했지만 내가 벽을 세우고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들과의 소중한 관계라면 좀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야 했다.


맑은 물인 줄 알았는데 흑탕물이었다.

나뭇가지로 휘휘 젓는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더 젓지 말고 가만히 놔둬야 가라앉지만 가라앉히기 위해 나는 그것을 더 세차게 젓고 있었다.


흙탕물이 깨끗해지려면 내가 이해하려 하려 들지 말고 사랑을 담아 바라만 봐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주1>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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