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틀집'덕분에

-진심-

by 지음

바닥에 까는 요를 커버가 구멍이 날 때까지 썼다. 천이 낡아 구멍이 여러 군데였지만 막내의 발가락이 걸리기 전까지는 그래도 쓸만했다. 발가락이 걸린 후부터 누빔에서 솜이 삐져나왔다. 그래서 동사무소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김에 낡은 이불을 폐기물로 신청하기로 했다. 근데 폐기물 스티커를 받으려고 신청을 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꼭 버리면 안 되는 뭔가를 버리는 느낌이었다.


결혼하면서 폭삭하게 단잠을 책임져 주던 그 아이를 버릴 수도 그렇다고 끌어안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먹고 스티커를 발급받고 터벅터벅 걸었다.


헉!! 저 멀리 내 시야에 ‘솜틀집’이 지하에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눈여겨보지도 않았는데 쑥 들어간 자리에 그 표지판이 왜 보였을까?

작은 글씨지만 하얀 바탕에 아주 선명한 빨간 글씨가 내 두 눈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이렇게 반가운 마음인데 왜 그냥 버리려고만 했을까?

‘우연은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일을 결정한다(주1)’고 한다. 동사무소로 향하는 길에는 보이지 않던 표지판이 스티커를 발급받고 돌아오는 길에 보였다. 버리려고 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겠는 마음이 그 작은 표지판을 눈에 띄게 했다고 믿는다. 우연이었을까? 내 진심이 우연을 가장해 ‘눈 크게 뜨고 여길 봐!’라고 방법을 알려준 것 같다. 진심이 통했다.


폐기물 신청을 하기 전까지 내 마음을 몰랐다. 어떤 마음이 진심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깊이 생각해야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도 눈에 보이는 것만 선택하고 한 겹 가려진 것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왜 가려져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가려진 것을 벗겨낼 수 있을까?

단지 새 이불이 덮고 싶었던 걸까?

왜 뒤늦게 애착 이불이라는 느낌이 들었을까?


스스로 진심이 뭔지 내가 뭘 원하는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 진심이 뭔지 한참을 생각해야 알 수 있을까 말까다.


마음은 단번에 진심을 말하는데 내가 꼬아서 듣고 있는 걸까?


이불을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버리고 나서 후회할 뻔했다.

진심!!



주 1>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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