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롱혼 Aug 19. 2023

미군과 UCLA학생이 되어 왔어요

그렇게 바라던 통계학과에 입성을 했다

미군이 우리 집에 왔다


아들이 한국으로 파병 왔는데 배치를 받다 보니 집 근처 미군부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미군이 우리 집으로 왔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의도치 않게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가장 인생에서 고민 많은 시기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대화를 해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서 나와의 대화는 뜸해졌다. 그래도 한층 철이든 아들 선동생 생활비를 조금 이나마 지원해 주겠다고 하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미국 TEXAS 군부대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스페셜리스트로서 부하들을 관리하며 생활했다. 그곳에서는 유럽 파병후 막돌아온 문제 많은 병사들이 있어 그들을 관리하느라 고생하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것을 생각하면 미안할 뿐이다.



어쨌든 오빠의 유무형의 지원 덕분에 엄마와 함께 안정적인 신분으로 학업에 열중한 딸은 산타바바라 컬리지에서 all A+를 받으면서 목표하는 UCLA 통계학과에 편입을 하기 위해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보내주는 돈이 빠듯하다 보니 엄마와 딸은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지금 보면 오히려 젊음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정신적인 도움과 가족 모두 합심하여 힘든 유학의 생활을 버텨 나간다는 의미가 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다급한 전화가 왔다

'합격했어! 일단  UC샌디에이고야 너무 기뻐 그리고 UCLA는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해'

다행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한 군데 라도 합격했으니 말이다.


며칠 후 딸이 울면서 전화가 왔다. 덜컥 걱정이 앞섰다.

'괜찮아 괜찮아 한 군데 합격 했잖아'


다독였지만 예민해진 기분에 엄마와 다투어서 카페에 나와있는데 UCLA발표가 나왔는데 두려워서 창을 못 열겠다는 것이다. 화를 낼 수도 없고 발표시즌이라 신경이 아주 예민해진 만큼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왔으리라 본다. 얼른 다독거려 들어가서 엄마와 함께 열어 보라고 조언을 했다. 조금 있다 아내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왔다.

'UCLA도 합격했어~' 울먹인다.


어쩌다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유학을 갔다가 다시 사정상 고등학교 때 한국으로 들어와 지내는 혼란을 겪으면서도 결국 미국 검정고시로 다시 미국에 가서 그것도 'UCLA 통계학과'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미국에서 UCLA학생과 미군인 아들과 고생한 아내와 국내에서 기러기인 내가 우리 가족이 모두 그간의 고생을 함께 자축하며 기뻐한 날이었다.


다음 해 시간을 내서 딸이 공부하는 LA로 가보았다. 어려운 공부를 하느라 무척 바쁜 딸이었다. 그래도 그날은 아빠에게 시간을 내어서 학교 구석구석 구경과 불곰(Bruin)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Royce Hall과 Powell Library도 들러보며 특히 그렇게 자랑하고 싶어 하던 학식을 두 군데나 들르며 먹었다. 너무나 기뻤다. 뿌듯한 마음에 사 온 기념품 다이어리는 지금도 잘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다녀간 후 코로나가 터져 딸의 재학 중에 다시는 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