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를 무려 6년을 따라다녔다. 6년이나 거절한 나도 대단하다. 더 대단한 것은 6년이란시간의 거절을 견뎌내 마침내 내 마음을 연 그의 끈질김이다. 나는 그가 나를 그렇게나 오래 따라 다닌 이유를 모른다. 집도 가난하고, 내가그렇게 뛰어난 수재도 아니고, 뭣 하나 나를 따라다녀 그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거절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 없는 집착과 기다림, 그 결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와 사귄지는 2년 정도 된다. 그는 성실하다. 나를 따라다닌 6년의 태도와 다르지 않은 태도로 나를 사랑해 주었다. 그는 내 웃는 눈이 예뻐서 반했단다. 그래서 그는 웃기는 얘기를 많이 해 준다. 내 웃는 눈을 많이 보고싶기 때문이란다. 난 활짝 웃어준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를 웃는 눈 하나로 6년을 쫓아다닌 그에 대한 보답이랄까? 할 수 있는 대로 웃어주고 웃을 일만 있으면 활짝 웃어준다.
그는 작가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기에 가난 하다. 그렇게 가난한 작가가 나를 선택했다.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이 사랑인지 고마움인지 아직 잘 모른다. 고마워서 마음을 열어 줬지만 그와 함께 할 가난한 미래는 사실 두렵다.
나는 그냥 직장에 다닌다. 그저그런 회사에 여사원. 별로 미래 없는 인생이다. 그런 나와 그가 만들어낼 인생에 과연 행복이란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어느날 우리는 커피숖에 앉아 있었다. 여느때 처럼 그는 잼있는 얘기를 해 줬고 나는 최선을 다해 웃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가 말했다, “그렇게 웃지마””응? 내 웃는 얼굴이 제일 예쁘다며?””억지로 웃지 말라나 말야. 넌 억지로 웃으면 눈이 일그러져.”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말했다. “우리 헤어지자””왜?””난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이야. 가난한 연인의 뜨거운 사랑 같은 거 할 줄 몰라. 너의 성실함에 마음을 열었지만, 역시 안되겠어. 너와 나는 평범한 행복을 추구할 수가 없어.””평범한 행복이 뭔데? 돈? 매달 적당한 월급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거?””응, 난 그게 소중해. 나같이 가난하게 자라나 사람은 돈이 절실해. 미안해. 헤어지자.””난 베스트셀러를 쓸 거야. 그럼 돈도 많이 벌 수 있어. 제발. 헤어지자고 하지마. 기다려줘.””너 베스트셀러 못 써. 그런 건 아무나 쓰니? 난 허황된 꿈에 인생을 걸 수는 없어.””허황된 꿈이라고???””그래, 미안해. 난 그냥 남 부럽지 않은 직장인이랑 결혼해서 평벙하게 살 거야. 미안해. 그만 헤어지자. 나도 널 보며 억지로 웃기에도 지쳤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헤어지고 곧 선 봐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과 결혼했다. 단촐하게 시작해서 알뜰하게 살림을 살아 몇년 후에는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 수록 점점 부요해지는 그런 소박한 삶이 나는 행복했다. 그는 나와 헤어진 후 얼마간 작품 활동을 쉰 것 같았다.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늘 출판사 도서 목록에 그의 책이 있었지만 나와 헤어진 후 그의 책은 사라졌다. 맘이 아팠다. 순수한 영혼, 나는 속물이라면 속물이지. 그는 정말 나 자체를 사랑해 주었다. 늘 나의 눈을 바라보는 것으로 인생의 의미를 채우고 행복을 더해가던 사람. 나는 그가 다시 책을 쓰기를 바랬다. 언젠가 서점 링기 순위에 그의 책이 오리기를 바라며 한번씩 서점에 가곤 했다.
우리 부부 생활은 순조로왔다. 전도 유망한 엘리트 사원에 남편을 도우며 지가장생활을 하는 아내. 서로 불만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아주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하루 하루 성실히 살아갔다. 아이도 하나 있다. 열심히 살며 애기 재롱보는 재미로 평범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갔다.
어느 날 습관적으로 서점에 갔다. 인기순위 학교에서 그의 이름을 찾았다. 그런데,,, 베스트셀러 작가 1위에 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가 서점가를 휩쓸고 있었다. 나는 뭔가 기쁘면서도 난감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뭔가? 그를 만나고 싶은 건가? 안될 일이다. 그렇게 마음 다잡고 있는데, 어느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야” 그였다. “응, 잘 지냈어? 그리고 축하해.””우리 한번 만나자.””안되””내가 찾아 간다?” 뭔가 목소리에서 집남과 집착이 느껴졌다. “그래, 만나. 우리 늘 만나던 거기서 기다릴게”
무서웠다. 벽돌한장씩 쌓듯 쌓아 올린 나의 평범한 행복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마치 그는 나의 행복을 무너뜨리려는 악의를 갖고 접근하는 것 같았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 그게 왔다. 예전의 그 촌스럽던 작가의 옷은 벗어버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티가 확 났다. “자잘 지냈니?””응, 뭐, 책 쓰고 그러고 지내고 있어.”’그래 잘 되서 다행이다. “나 더 되찾을 거야.”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안된다는거 알잖아? 제발 집착은 버리고 너도 너의 행복을 찾아.””내 행복? 그건 내가 네 웃는 눈을 볼 때만 가능한 거야. 왜 웃어주지 않지?””제발 그러지나, 난 남편이 있는 가정주부야. 제발 내 행복을 무너뜨리지 말아줘.”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럼 좋아. 널 되찾겠다는 생각은 버릴게. 대신 정기적으로 날 만나줘. 만나서 차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아!!!제발,,, 이러지 말아 줘. 제발 부탁이야.””아니 왜 한번씩 만나 차 한잔 하자는게 뭐가 어해서 이러는 거야? 니 그 평범한 행복이 그렇게 대단한 거니?””제발,,,부탁이야 그러지 말아줘. 잘 잊어. 제발 잘 잊고 네 삶을 살아.””내 삶? 내 삶은 네 눈 속에 있어. 그러지 말고 내 부탁 들어줘 제발 부탁이야.”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음을 깨달은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장소는 우리가 늘 만나던 그 곳. 거기서 우리는 한달에 한번씩 만나 차를 마시길 했다.
첫번째 만남. 내 경직된 표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침묵을 지키다가 가버렸다.
두번째 만남. 내 일그러진 얼굴로 건넨 인사는 그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그는 곧장 나갔다.
세번째 만남. 나는 울었다. 이 끔찍한 고문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침묵을 지키다가 가버렸다.
네번째 만남. 그는 내게 말했다. “그만 두자. 너는 네 눈을 잃었어. 아무리 네 눈을 응시해도 예전의 네 눈을 찾을 수가 없어. 이제 널 놔 줄게. 잘가.””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해. 상처줘서 미안해. 널 기다려 주지 못해서 미안해. 엉엉엉.”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있다. 그의 책은 날개돋힌 듯이 팔렸다. 다행이다.
내 젊은 시절의 잠깐의 연애가 내 결혼생활의 발목을 무섭게 잡았다. 하지만, 그는 곧 놓은 주었다.나는 지금 행복하다. 내가 생각하던 행복에 충실하다. 그는 행복할까? 그의 유일한 행복인 내 눈동자를 잃어버리고 어디에서 또 다를 행복을 찾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