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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의 일생

by Zarephath

‘술 사 와, 이 년아, 술 사 오란 말이야. 나아서 키워줬으면 고마운 줄을 알아야지, 싸가지가 없어 싸가지가.‘ 이젠 무섭지도 않은 아빠의 소란이 다혜는 그저 지겨울 뿐이다. 다혜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즉시 집을 나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만 해도 다혜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인자한 아버지와 예쁜 엄마, 그 사이에서 다혜는 공주처럼 자랐다. 그러나 행복 뒤에는 불행의 마수가 기다리고 있는 법,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엄마까지 집을 나가버리자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처음엔 술을 먹고 난동 부리는 아빠가 너무너무 무서웠지만, 이제 다혜는 무섭지가 않다. 그저 지겨울 뿐, 거기에 감정을 하나 더하자면 증오심. 다혜는 중학교를 다니는 중에 서서히 결심하게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즉시 가출하겠노라고. 어딜 가서 무엇을 한다 해도 지금보다는 행복할 것 같았다. 아니 행복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삶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술을 사서 들어오는 길에 옆집 친구 대식이 안부를 묻는다. ’ 다혜야 오늘은 잘 지냈니? 또 술 사가는 모양이네?‘’응, 늘 그렇지 뭐‘’ 대식아 넌 뭐 했냐? 중학교 졸업이 내일 모랜데 넌 어째 그리 놈팡이냐? 고등학교를 안 갈 거면 취직이라도 해야 할 것 아냐?‘’아 알았어. 빨리 술이나 가지고 들어가.’

다혜는 사 온 술을 아버지 방에 던져 넣고 방에 들어가 누웠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다음날 다혜는 학교에 갔다. 성적이 좋은 다혜가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한 건 학교에서도 충격적이었다. 전교 5등을 벗어난 적이 없는 우등생이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하자 학교에서도 난리가 났다. 가정형편을 잘 아는 담임은 다혜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물심양면으로 진학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다혜의 결심이 워낙 완강하여 학교에서도 그만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드디어 졸업식, 다혜는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아침 일찍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그리고 취직하기로 약속된 공장에 들어갔다. 2교대로 돌아가는 공장이라 기숙사가 있었고 식사가 제공되었다. 첫날 각자 일을 배정받고 일을 배우고 있는데, 작업반장이란 사람이 지나가면서 엉덩이를 꽉 쥐고 가는 것이었다. 수치심도 그런 수치심이 없었다. 회사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조처를 취해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 잦은 성추행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성추행은 다혜에게 너무 힘들었고 아빠에게서 도망 나와 들어온 곳이 겨우 이런 곳인가 하는 절망감에 가슴을 부여잡고 울었다. 하루는 작업반장이 다혜를 부르더니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놓고 한다는 소리가 자신과 성관계를 하면 시급의 5%를 올려 주겠다는 소리였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다혜는 공장을 그만두었다.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찾던 다혜는 식당 주방 보조 일을 시작했다. 일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대체로 쉬웠고 주인아주머니도 잘해 주셨다. 어릴 때 사고로 잃은 딸이 살아 있었으면 지금 딱 다혜 나이일 거라며 딸같이 대해 주겠노라 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따뜻한 환대에 다혜는 마음 문을 열고 열심히 일했다. 가끔씩 오는 진상 손님들만 아니면 일도 할만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 가게에 문신한 남자들이 찾아왔다. 돈을 갚으라고 위협하더니, 돈이 없으면 다혜를 넘기라고 했다. 그렇게 잡혀간 다혜는 인신매매범들에게 넘겨졌고 시골 어느 다방에 팔려갔다. 그나마 사창가 같은데 팔려가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일할 수록 다혜에게 지워진 빚은 늘어만 갔고 나중에는 결국 사창가로 팔려가게 됐다. 사창가에서 몇 개월을 지냈을 무렵, 의외의 손님을 받게 되었다. 대식이었다. 대식이에게 안겨 한참을 펑펑 울고 난 다혜는 물었다.‘너 이런 데도 다녀?’‘그럼 결혼도 못하고 못생기고 매력 없는 내가 어디 가서 섹스를 하냐?’ 둘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자주 보자는 약속을 했다. 대식이는 어느 조직에서 조직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그 사창가도 대식이네 조직이 관리하는 곳이고. 그나마 아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다혜에게는 다행으로 여겨졌다. 어느 날 대식이가 다혜에게 말했다.‘나랑 결혼하자. 결혼하면 손님 안 받아도 돼. 보스가 여기서 빼줘. 조직원 마누라가 되면 더 이상 손님 안 받아도 되거든.’ 다혜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저주받은 인생에서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유일하다 생각했다. ‘응, 그러자, 그럴게, 나랑 결혼해 줘.’

둘은 결혼을 했다. 다혜는 사창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대식이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혜는 이제 인생이 평범하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조직의 보스가 다혜에게 침을 흘리는 것이다. 말단 조직원의 여자이니 빼앗는 것은 일도 아니고, 다혜도 보스의 여자가 되는 것이니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우리 도망가자.‘다혜가 먼저 제안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그럼 넌 남한테 네 여자를 빼앗겨도 괜찮다는 거야?‘대식의 반응에 실망한 다혜는 따져 물었다.’아니 그런 얘긴 아니고,,, 그래 도망가자.‘둘은 간단하게 짐을 싸서 오토바이에 싣고 달리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조직원들이 쫓아오기 시작했고 더 이상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우리 같이 죽어 ‘다혜가 얘기했다’,,, 그래 그러자. 나도 더 이상 이렇게 구차하게 목숨 부지할 생각 없다.‘잠깐 죽기 전에 할 일이 있어’‘뭔데?’ 다혜는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의 모든 저주의 근원인 아버지를 죽일 생각이었다. 대식에게 얘기하고, 둘은 아버지를 죽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간 다혜는 여전히 술병을 입에 물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고 술병 가운데 하나를 집어 들고 깨트려 목을 그어 버렸다. 둘은 살인 및 살인 공모로 기소되었고, 각각 25년 형을 받았다. 행운인지 아닌지, 둘은 보스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고, 교도소의 배려로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렇게 한 많은 다혜의 얘기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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