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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Jun 28. 2022

잊혀진 자들의 전쟁 - 6. 미지와의 조우

혜수의 날카로운 시선에 당황하며 나균은 대답했다.



“선량한 사람은 정말 손끝도 댄 적이 없어요. 나쁜 놈들 손 좀 봐준 정도지. 그것도 병신을 만든 게 아니라 정신을 조금 차리게 한 정도예요."



“그래요. 그 말을 믿을게요. 나균 씨 눈을 들여다보면 맑은 영혼이 보여요. 살인을 한 야수의 눈빛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살인을 한 흡혈귀는 보통 사람은 맡을 수 없지만 아주 미세하게 짐승의 냄새가 나거든요. 나균 씨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으니 괜찮은 것 같아요."



"휴. 다행이네요."



 "흡혈귀는 한 번 사람의 피를 빨고 죽여본 적이 있으면 그 피 맛을 잊지 못해서 또 살인을 저지르게 돼 있어요. 우리 코븐(coven-마녀들의 집회)에서는 사람들을 해치는 흡혈귀를 추적해서 사냥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요. 각 지역의 코븐 마다 주로 상대하는 크리처(초자연적 존재)가 조금씩 다르지만 아시아 태평양 지부의 주임무는 흡혈귀 사냥이에요. 

 그러나 다른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크리처는 물론 흡혈귀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수가 급감해서 마녀들 중 많은 수가 나처럼 자신의 새 인생을 찾아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돌 생활을 하는 거죠. 그러나 갑자기 지부에서 호출이 오면 언제든 사냥에 나서야 해요. 저의 본질은 사냥꾼이지만 아이돌 가수이기도 하죠."



“빈스 형은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내가 2년 전 아이돌로 갓 데뷔하고 얼마 후 지부로부터 호출을 받았어요. 로커 망나니 하나가 흡혈귀로 의심되는데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지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망나니라니. 콘셉트인데. 무대 밑에선 얼마나 선량한 시민으로 사는 데 그런 소리를 하나?”



“아무튼 그때 서로 칼을 맞대고 죽을 듯이 싸웠지만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빈스는 왠지 살인자같이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잠시 휴전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빈스는 살인한 적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됐어요. 짐승의 냄새도 나지 않았고요. 빈스 덕분에 요즘 흡혈귀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설마 혈액 팩을 이용할 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줄었죠.”



“혹시 우리 아버지도 당신들이 사냥한 건가요? 우리 아버지도 제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었어요.”



“금시초문이에요. 우리가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세상에는 다른 헌터 조직도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시노비(닌자)라고 불리는 자객 조직 중 일부는 사냥꾼의 역할도 맡고 있다고 들었어요.”



“가슴에 수리검이 박혀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건 시노비 헌터 조직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나도 그 조직에 대해 자세한 건 몰라요. 시노비 헌터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어요.”


 

나균은 혜수가 아버지를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이 세상에는 인간과는 다른 괴물이 득시글득시글한 건가요?”



“민담이나 소설, 영화에서 묘사되는 대부분의 요괴나 괴물들은 실제 하는 존재를 왜곡하고 과장해서 묘사한 거라 생각해요. 즉, 어떤 방식으로든 실제 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다고 그들을 괴물로 불러도 된다는 건 아니죠. 우리는 보통 크리처라고 부르고 있어요.”



“아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부를게요.”



“나이는 같으니까 말 편하게 하자.”



“좋아. 아까 하늘은 나는 빗자루는 어떻게 만들어낸 거야? 장검은 어디서 생긴 거고?”



“우리는 영점장의 에너지를 이용해 물체를 구현해낼 수 있어. 영점장은 일종의 4차원 세계로 보면 되는데 인류 역사 이래의 모든 지식과 태초부터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야.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지. 

 우주의 빈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걸로 보일지라도 에너지로 가득 차 있어. 핵폭탄의 엄청난 위력을 알고 있을 거야. 핵폭탄의 엄청난 에너지는 핵이 분열하거나 융합할 때 발생한다는 예기도 들어봤을 거야. 쪼개어 보면 거의 빈 공간이나 다름없는 핵이 분열할 때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발생하는 걸까? 

 우주 공간은 가공할 에너지로 가득 차 있기에 핵이 분열하거나 융합될 때, 즉 물질과 에너지 사이의 질서가 형성되거나 파괴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는 거야. 영점장이란 우리가 그 무한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하면 돼. 

 4차원의 공간이라 눈에 안 보이긴 하지만 실제 하는 공간이야. 수많은 과학자나 발명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인 곳이기도 하고. 우리 같은 존재들은 타고난 에너지 성향과 수련, 재능에 따라 영점장에서 다른 물질을 뽑아낼 수 있어. 

 자신의 에너지가 클수록 영점장에서 끌어낼 수 있는 물질의 위력도 커진다고 생각하면 돼. 우리 종족은 이동 시에 이용할 수 있는 빗자루 모양의 물질을 꺼낼 수 있고 각종 검이나 활 등의 무기류를 꺼낼 수 있어.”



“빈스 형님, 우리 종족은 뭘 꺼낼 수 있어요?”



“우리도 각종 무기류를 꺼낼 수 있는데 개인의 에너지 성향과 능력에 따라 달라. 그리고 생물을 불러낼 수도 있어. 내 경우엔 거대한 늑대인 크루거를 불러낼 수 있어. 내가 이름 붙였지. 나중에 인사시켜 줄게.”



빈스는 윙크를 하며 나균에게 미소 지었다. 느끼하지 않고 상쾌하게 느껴지는 윙크와 미소였다. 



“저도 저만의 무기나 짐승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네가 수련을 통해 네 에너지 레벨을 끌어올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거야.”

 


혜수는 덧붙였다.



“물론 영점장에서 뭔가를 끌어내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그래서 수련도 필요하고 개인의 에너지 증폭도 필요해.”



“내가 볼 때 나균이 너는 무술도 더 배워야 하고 몸의 에너지 센터인 차크라를 더 계발해야 해. 차크라를 계발하기 위해선 명상을 하며 차크라에 집중해서 차크라를 활성화하고 증폭시켜야 해. 인체에는 크게 7개의 차크라가 있는데 차크라에서 뿜어내는 영적 에너지의 크기에 따라 영점장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도 비례해서 커지니까. 

 넌 신체적 강함은 이미 가지고 있어. 하지만 차크라의 계발은 영적인 수련을 동반해야 돼. 영적인 수련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지.”



“그러는 넌 아이돌 생활하느라 수련할 시간이 있어?”



“나는 코흘리개부터 계속 수련해왔고 지금도 틈틈이 명상을 통해 에너지를 증폭하고 있어. 그리고 나는 천재니까 너하고 비교하지 말아 줘.”



나균의 눈에 혜수의 잘난 척하는 말투가 귀엽게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혜수의 목의 파란 정맥이 나균의 눈에 확 들어왔다. 나균은 급격한 충동을 느꼈다. 혜수의 혈관에 이빨을 박고 피를 빨고 싶은 충동 말이다. 



‘왜 갑자기 흡혈귀의 본능이 고개를 드는 거지? 여태껏 가만있다가.’



‘혜수의 피를 빨게 되면 혜수가 흡혈귀로 변하게 되는 건가? 나처럼 변하게 되는 건가?’



“빈스 형, 내가 다른 사람의 목에 이빨을 박고 피를 빨게 되면 그 사람도 흡혈귀가 되나요?”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면 죽는 사람도 있고 초자연적 존재는 능력을 잃기도 해. 어쨌든 물린 사람도 흡혈귀가 되려면 물리고 난 뒤 다시 그 뱀파이어의 피를 마셔야 돼.”


나균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참기 힘든 충동이었다. 혜수의 하얀 목에 돋아난 푸른 정맥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나균은 계속하여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흡혈의 충동은 갑자기 몰려왔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아까 그 괴한들은 뭘까요? 쓰러진 한 놈 얼굴이 순간적으로 도마뱀처럼 보였어요. 게다가 격투 중에 그놈들 중 몇몇은 녹색 피부를 드러내기도 했어요.”



“흠 그래? 크리처 중에 녹색 피부를 가지고 도마뱀 얼굴을 했다면 렙타일인 것 같은데. 렙타일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은 몰라. 그들은 오래전 지구 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고대 종족이라는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야. 이건 영국에 있는 우리 록계의 대부 ‘오즈’ 형님에게 물어봐야겠어. 그분은 1000년도 넘게 사신 뱀파이어니까 여기에 대해서 뭔가 아실 것 같아.”  빈스가 덧붙였다. 



“오즈가 정말 뱀파이어였어요?”  나균이 놀라서 물었다.



“너 오즈 님의 앨범 재킷 못 봤어? 이제 왜 그런 콘셉트인지 알겠지?”



오즈의 앨범 재킷은 흡혈귀나 늑대 인간 등의 크리처가 낭자한 선혈과 함께 등장하는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혜수가 타깃이 된 것 같으니까 혜수는 코븐 지부에 보호를 요청하고 당분간 조심해야 할 것 같아. 각자 자신의 활동을 하며 조용히 조사를 계속하자. 뭔가 알아낸 것이 있으면 서로에게 즉시 연락하고.”

 


그러나 그로부터 몇 달 동안 아무 일 없이 세상은 조용히 흘러갔다. 나균도 UFC 세계 랭커들을 몇 명 꺾고 드디어 세계 챔피언 타이틀 결정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낮에는 체육관에서 훈련하며 가볍게 땀을 흘리고 저녁에는 집에서 집중적으로 명상을 하며 차크라를 계발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떤 날은 나균은 단전에서 강한 차크라의 소용돌이를 느끼기도 했는데 따뜻하지만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와도 같은 에너지였다. 어느 날은 양미간의 차크라에서 빛이 앞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환상 속에서 커다란 암갈색의 늑대 한 쌍이 울부짖는 것을 보기도 했다.



가끔씩 보는 TV의 혜수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별 탈 없는 듯했다. 빈스 형님은 감감무소식이었는데 쉽게 위험에 처할 사람은 아닐 것 같아 나균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여의도 상공에 거대한 원반이 나타났다. 여의도를 다 뒤덮을 만한 엄청난 크기였다. 여의도 증권맨들은 갑자기 창밖이 그늘진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창밖을 내다보다 기겁한다. 하늘이 거대한 벽으로 뒤덮여 있었다. 길을 가다 대낮에 갑작스레 거리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본 사람들 역시 평소에는 있는지도 모르던 하늘을 오려다 보았고 경악했다. 



군의 전투기가 즉시 출동하고 무선 송신으로 원반을 향하여 정체를 밝히라는 무전을 몇 번 보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방송에서는 전 세계 각 대도시 지역 상공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원반에 대한 보도를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집에서 모처럼 휴일을 맞아 쉬고 있던 나균은 tv를 보며 중얼거렸다.



“세상이 망하려고 그려나. 이제는 괴물에 이어 외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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